런던올림픽이 연일 화제이다. 올림픽도 승부인 이상 결과의 의미는 크고 중요하다. 메달 색깔 및 개수는 영광을 보여주는 동시에 잔인하다. 최근 침체가 계속되는 일본 남자배구는 그 전형일지 모른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일본은 남자배구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의 흥분은 중학생이던 필자에게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 하나가 감독 마쓰다이라 야스타카(松平康隆)의 존재였다. 그가 코치로 참가했던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참패했다. 그는 이듬해부터 감독을 맡아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은메달, 뮌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일본은 어떻게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경영학자로서 주목하는 것은 감독 마쓰다이라의 능력이다. 마쓰다이라 감독은 선수 출신이지만, 신장이 160㎝에 불과했다. "일본은 체격으로 세계 최고의 팀이 될 수는 없지만, 운동 능력과 기술력으로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그는 스스로 스카우트해 모은 선수들을 철저하게 단련, 8년이 걸려 최강의 팀을 완성했다. 일본팀의 강점은 당시 세계 최초로 다양한 기술을 창조한 것이었다. 시간차 공격, 드라이브 서브 등 각종 신기술을 만들었다. 파워와 키에서 떨어지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을 만들어 소련·동독·폴란드 등 강호들을 격파했다.
기업의 본질도 똑같다. 세계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다른 업체가 갖고 있지 않은 독창적인 힘이다. 기업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의 원천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 갖지 못한 경쟁력을 구축했기 때문에 눈부신 실적을 내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의 2분기 결산이 발표됐다.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6조7000억원이라는 영업이익은 압도적인 성과다. 일본 언론이 "일본의 IT기업을 다 합쳐도 삼성을 이길 수 없다"는 보도를 할 정도이다. 일본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인해, 어쩌면 부러움으로 한국 기업에 대해 과장된 칭찬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본의 배구가 40년 전에 화려한 꽃을 피웠지만 지금 존재감이 희박해졌듯이 한국 기업들에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보다 기업의 세계는 더 경쟁이 치열하고 영원한 승자도 없다. 더군다나 삼성 등 한국의 대기업이 아무리 좋은 실적을 냈다고 해도 애플처럼 독창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이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자신만의 독특한 장점과 경쟁력을 계속 확대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업에 대한 평가가 기업의 본질이 아닌 것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가끔 대기업이 기본적으로 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의 존재 이유는 정당한 경영 활동을 통한 이윤 추구이다. 국가에 세금을 내고,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도 한다. 무엇보다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계속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어야 고용도 하고 설비투자도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대기업에 대해 기업 자체로 보기보다는 정치적·사회적 존재로 보는 시각이 높아지는 분위기이다. 올해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정치의 해'라고 해도 감정과 이념이 앞선 논의는 곤란하다.
한국 대기업들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오너 경영에 집중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너 경영의 장점이 작용했다.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은 기업의 핵심적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 기업들이 보여줬다. 세계적으로도 오너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위기 시에 빛을 발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신속한 의사결정의 중요성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침체에 빠진 것도 샐러리맨 사장 중심이다 보니 의사결정과 추진력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법치국가인 이상, 대기업 오너도 법령 위반이 있으면 기업 범죄로 당연히 엄격히 처벌받아야 한다. 법령 준수는 경영자의 기본적인 책무이며 기업 외부의 비판 이전에 스스로를 도태로 이끄는 요인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마쓰다이라 감독이 일본 배구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든 명장(名將)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큰 아쉬움은 그 성공을 지속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일 수 있다. 한국 기업의 최대 장점인 오너 중심 경영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대기업이 이룬 눈부신 성과를 지속하려면 무엇보다 기업가가 스스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도 기업을 기업으로 평가하고 기업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
입력 2012.08.0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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