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음모說'은 선거에 得보다 毒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12.08.08 23:30 | 수정 2012.08.08 23:39

새누리당 박근혜 경선후보 캠프의 일부 인사들이 현영희 의원 비례대표 공천 비리 의혹 사건이 터진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음모설을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음모설의 요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이례적으로 의혹 내용을 공개했고 곧이어 김문수 경선후보를 비롯한 비박(非朴) 주자들이 경선 불참에 들어갔던 것은 박 후보를 흔들려는 청와대의 공작(工作)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현영희 의원의 수행비서를 지낸 정동근씨가 현 의원이 지난 4·11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이던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을 건넸다고 선관위에 고발해 시작됐다. 음모설이란 것은 결국 청와대가 뒤에서 정씨를 조종했거나 정씨의 고발을 받은 선관위가 청와대 지시를 받고 사건을 공개했다는 얘기다.

정씨가 고발에 나선 건 자신을 보좌관으로 채용하지 않은 현 의원에 대한 개인적 불만 때문이라고 현 의원 스스로 말하고 있다. 선관위도 비리 제보가 들어오면 자체 조사를 거쳐 수사가 필요한 중대사안임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하면서 그 사유를 함께 발표하던 관례를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박 주자들이 이명박 대통령 쪽에 가까웠던 정치인들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새누리당에서 당직 인선을 할 때나 공천을 할 때 무슨 힘을 썼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어떤 정치인이 잇단 실정(失政)에 가족 비리까지 겹쳐 공격당하고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정권 말기의 대통령 편에 서서 큰일을 도모하겠는가.

박 후보 측은 과거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을 때도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고 의심했다. 현 정부에 몸담았던 인사 중 박 후보를 비난하고 안 교수를 좋게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현 정부를 거치면서 서로가 서로를 탓했던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을 협력적 관계로 보긴 어렵다. 더욱이 현직 대통령 사람들이 차기 후보 지지 진영과 비판 진영으로 갈리는 건 우리 정치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음모설은 강자(强者)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약자(弱者)의 의심에서 출발한다. 의심에서 출발하는 음모설은 사실을 인과관계로 엮는 것이 아니라 자기주장에 편리한 사실들만 짜맞춰 만드는 게 보통이다. 9·11은 미국이 일부러 일으킨 사건이라든지 천안함 사건을 대한민국이 일으켰다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음모설이다. 이번 음모설도 선관위의 사건 공개와 비박 주자들의 경선 불참이란 두 가지 사안을 묶어 갑자기 청와대 음모로 건너 뛰기를 한 경우다.

대통령이 되려는 진영에서 음모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설을 퍼뜨리는 건 도덕적으로도 문제이지만 현실에서도 도움이 안 된다. 음모론은 선거에 득(得)보다 독(毒)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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