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돕다 기절… 별명은 '바보 여고생'

조선일보
  • 권승준 기자
    입력 2012.07.27 03:08

    일산 정발고 박현선양
    7년간 673시간 봉사 활동… "동생이 장애인이라 더 열심"

    경기도 고양시 일산 정발고 3학년 박현선(18)양은 반에서 '바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왕따'를 당해서가 아니다. 3년 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집을 방문해 목욕을 시켜주는 이동 목욕 봉사를 하다가 쓰러진 뒤 붙은 별명이다. 통상 2시간 정도 하면 진이 빠지는데, 이날 박양은 신이 난다며 4시간 정도 하다가 현기증을 심하게 일으킨 것이다. 이후 친구들은 대충 해도 되는데 '바보처럼' 열심히 한다고 현선이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된 박양의 봉사활동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만 673시간이다. 장애인 목욕 봉사, 저소득층 초등학생을 위한 과외수업부터 소아암 무료병원 건립 캠페인까지 다양하다. 박양의 봉사활동은 또래 친구들이 대학 진학의 필수 요건으로 갖추는 '스펙 쌓기'와는 다르다.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배경엔 정신지체장애 3급의 남동생(12)이 있다. 박양은 유치원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가장이 돼 돈을 벌러 다니는 어머니 대신 동생을 도맡아 키웠다.

    "어렸을 때는 동생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동생이 씻고 밥 먹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글을 배우는데 동생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았을 땐 동생을 잡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22일 경기도 일산의 정발고 3학년 박현선양이 집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를‘사랑의 집’에 사는 지체장애인들에게 먹여주고 있다.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박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해왔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박양은 이후로 멀리 갈 일이 있으면 꼭 동생을 데리고 다녔고, 길에서도 항상 손을 놓지 않았다. 박양은 유치원 때부터 동생과 함께 사회복지관을 드나들면서 봉사를 배웠다고 했다. 복지관에 가면 항상 밥을 먹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니 점심 해결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드나들던 복지관에서 글도 배우고, 책도 읽으면서 공부했다.

    하지만 박양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곳에 동생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지체장애 1급 장애인도 많았고, 거동조차 제대로 못 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아픈 노인도 있었다. 박양은 이들에게 밥을 먹여주거나 씻는 것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동생보다 아픈 사람들을 많이 돌봐주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내 동생을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봉사였지만, 점점 봉사는 일상이 됐다.

    박양은 매달 2~4회씩 일산의 장애인복지시설인 '사랑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같은 반 장애인 친구를 가장 먼저 돌보는 이도 박양이다. 박양의 친구인 허예진(18)양은 "현선이는 대화하다가 장난으로 욕을 해도 싫어하고, 나중에 커서 술 마시자는 이야기만 해도 핀잔을 줄 정도로 얌전하고 바른 아이"라며 "현선이가 봉사활동을 정말 즐기면서 하는 걸 보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양도 "처음에는 반 친구들도 '대학 가려고(스펙을 쌓는다는 뜻) 저렇게 열심히 봉사활동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곤 했는데, 제가 쓰러지는 걸 보고 나선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고 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박양은 지난 20일 홀트아동복지회와 신한카드가 선정한 '아름다운 청소년 10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