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를 꿈꿨는데 고꾸라지기만… 인생, 참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2.07.27 03:10

    [김애란, 단편 8편 묶은 새 소설집 '비행운' 펴내]
    나도 어느새 서른… 삶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성인'이 되었네요

    때로는 몸짓과 표정이 말을 대신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작가는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김애란(32)은 그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주저했다. 어쩌면 이 침묵과 말줄임표에 진실이 있는지도. 번지르르한 말 한마디로 거짓 위로와 힐링(healing)을 일삼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행복을 기다리며 비행운을 꿈꾸다

    그의 새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을 읽고 나면 많이 아프다. 행복을 기다리며 비행운(飛行雲)을 꿈꾸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쇄적 불운의 비행운(非幸運)에 추락하는 사람들. 전작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 인생'을 거치며,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좀 더 다양한 인물과 시공(時空)으로 확장됐다.

    단편 8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문자 그대로 악화일로(惡化一路)의 삶을 거듭한다.

    이번 소설집은 지난 5년에 걸쳐 쓴 단편 모음이다. 그는“나 자신에게 쓴 편지가 몇 년 만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단편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2년 만에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온 선배 이야기로 시작한다. 학창 시절 마음을 줬던 선배는, 겨우겨우 케이블 방송에 들어갔다고 했다.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전화였는데, 거의 반강제다. 연민으로 나갔더니, '푸드파이터'의 엑스트라를 해야 한다는 것. 먹기 대회 우승자 옆에서 자기 몸피보다 한 치수 작은 레슬링 유니폼을 입고 핫도그를 먹어 치워야 하는 역할이었다.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벌레들'에서 상황은 더 나빠진다. 철거가 진행되는 재개발지구 A구역과 근처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장미 빌라. 전쟁 같은 삶과 겨뤄 겨우 전세로 들어온 보금자리다. 그런데 철거 현장의 벌레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창궐하고, 심지어 몸통이 애호박만 한 벌레가 들어오려고 꿈틀거린다. 사투 끝에 벌레를 밀어내지만, 실수로 수납장 위의 결혼반지까지 창문 밖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 집에 돌아오지 않은 남편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고, 출산이 임박한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절벽 아래로 내려간다.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들은 더 아득하고 막막한 상황으로 추락한다. 중국인 아내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택시 운전사('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감옥으로 사식이나 넣어달라는 철부지 아들에게 지쳐 추석 당일 근무를 자원하는 공항 청소 용역 아줌마('하루의 축'), 남자 친구에게 사기당해 불법 다단계 합숙소로 들어왔다가 결국 순진한 과외 제자까지 같은 곳으로 끌어들이는 서른 살 불문과 졸업생('서른')….

    ◇30대, 성인이 된다는 것은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문단에 등장한 지 10년. 30대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조금씩 서로를 해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이가 서른 살인 것 같아요. 성인이 된다는 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성인의 짐은 버겁겠지만, 1980년생 김애란에게, 아니 그의 동세대에게는 다른 세대와는 구별되는 결핍이 있다.

    단편 '호텔 니약 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교수님 세대는 가난이 미담처럼 다뤄지는데 우리한테는 비밀과 수치가 돼 버린 것 같아."

    이 문장을 인용했을 때, 작가는 쓸쓸하게 말했다. "다른 세대는 정치적인 명찰이 붙잖아요. 가령 386이나 419처럼. 우리는 처음으로 경제적 특징으로 불린 세대인 것 같아요. '88만원 세대' 같은 표현들."

    어쩌면 그 수많은 위로는 우리 각자의 죄책감에 대한 간편한 알리바이는 아니었을까. 미욱한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진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가능할까.

    "…, …. 그곳에 도착한 후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가는 도중과 과정에 대해 말하는 게 순서일 듯해요. '성취'라는 이름보다는 '노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질문과 대답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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