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강승희씨

미국 유학을 하며 신혼 시절을 보낸 대학교수 임준형(44)씨는 지난해 초 "집을 지어보자"는 아내 손미경(41·고교 교사)씨의 '벼락 같은' 제안을 받아 듣고 고민에 빠졌다. 7년간의 미국 생활을 제외하곤 줄곧 아파트·빌라에서만 살아온 임씨에게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이란 '외풍이 많이 들고 추운 공간'이란 선입견만 있었다. 이런 남편의 마음을 흔든 건 아내 미경씨의 간곡한 호소였다. "이상하게 아침마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도 눅눅하잖아. 당신은 안 그래? 이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고 싶어."

건축가 강승희(47·노바건축 소장)씨가 지난해 말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에 설계한 여현재(餘賢齋·지혜가 머무는 집)는 '건강한 삶'을 원하는 부부의 바람을 담은 집이다. 강 소장은 2006년부터 '여유헌' '여천재' 등 목조주택 7~8채를 설계했다. 최근 '여현재'에서 만난 건축가는 "건축주가 미국 유학시절 목조주택에 살던 좋은 기억을 갖고 목구조 주택을 의뢰해왔다"며 "한창 자라는 초등학생 자녀들과 실내 공기에 예민한 부부를 위해 자연 그대로를 집 안에 가져오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이 집의 외관과 내부는 전부 나무다. 가운데 계단실을 중심으로 두 동으로 나뉜 2층짜리 집을 지탱하는 건 '경골(輕骨)목구조'. 철근 콘크리트로 기둥과 보를 만드는 일반 주택과 달리, 규격 크기의 나무(가문비·소·전나무)를 40㎝ 간격으로 촘촘하게 둘러친 뒤 그 사이를 단열재로 채워 골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구조재 바깥쪽은 구조용 합판을, 안쪽은 석고보드를 덧대 마무리했다. 내부 계단은 물푸레나무, 2층 가족실 책장은 자작나무다. 외관은 적삼목으로 주로 마감하되 일부 벽돌 타일과 회반죽을 써 지루함을 없앴다. 연면적 238㎡(72평), 공사비는 평당 500만원 정도가 들었다.

건축가 강승희씨가 설계한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목조주택‘여현재’. 골조는 물론 외관과 내부 모두 나무를 사용했다. 독립된 두 개의 계단실을 통해 두 가구가 두 개 동을 엇갈리게 사용한다. 주인집이 왼쪽에 보이는 동쪽 1층과 서쪽 2층을 쓰고, 세입자가 서쪽 1층과 동쪽 2층을 사용하는 식이다.

강 소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대부분이 목조주택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전체 주택의 20~30% 정도만 목구조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목조주택 하면 많은 사람이 전통한옥이나 통나무 주택만 떠올려요. 정확히 얘기하면 이런 주택들은 목조주택의 한 종류인 거지, 전부가 아니거든요." 그는 "'화재에 취약하다' '튼튼하지 않다' '썩기 쉽다'는 것도 목조주택에 대한 편견이자 오해"라고 했다. "내·외부를 불연재로 단단하게 마감하기 때문에 내화(耐火)성이 강합니다. 또 방습처리와 레인스크린(비를 받아 배수하는 시설) 등을 철저히 시공해 쉽게 부패하지도 않아요." 실제 이 집은 터를 닦은 뒤 주택 바닥을 땅으로부터 약 20㎝ 띄워 습기로부터 보호했고, 외장재 밑에 방충망을 달아 벌레의 침입을 막았다.

(사진 위)서쪽 동 2층에 있는 주인집 가족실. 교수·교사인 건축주 부부의 요청대로 벽면을 자작나무 합판 책장으로 짰다. (사진 아래)동쪽 동 1층에 있는 주인집 거실. 평범해 보이지만 골조는 전부 목재다.

겉에서 보면 큰 단독주택 같지만 사실은 두 집이 사는 다가구주택. 예산이 많지 않은 탓에 건축주는 건물 중 일부를 세주기를 원했고, 건축가는 집을 두 동으로 쪼갠 뒤 1층과 2층을 엇갈리게 크로스 배치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임씨 가족이 동쪽 1층과 서쪽 2층을, 세입자 가족이 서쪽 1층과 동쪽 2층을 쓴다. 강 소장은 "벽으로 막아져 두 집이 각자 사용하는 계단실을 가운데 두고 공간을 엇갈리게 연결해 수직으로 1·2층을 쓸 때보다 훨씬 넓은 공간감을 주려고 했다"고 했다. 임씨 역시 "집 전체를 쓰는 느낌에다가 동서남북 고른 조망도 누리게 됐다"고 했다.

목재, 친환경 접착제 등 최대한 자연적인 것을 활용했기 때문에 콘크리트나 MDF합판 접착제 등이 내뿜는 독소가 거의 없다고 강 소장은 덧붙였다. 건축주 임씨는 "덕분에 30여년간 고생하던 비염이 거짓말처럼 나았고, 딸 다연(10)·서연(7)이의 가벼운 아토피 증상도 호전됐다"고 했다. "몇 년 후 부모님을 이곳으로 모셔올 생각인데 지금 이사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세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자연에 한층 가까워진 것 같아 무척 기쁩니다." 발코니로 자리를 옮긴 임씨가 한가운데 놓인 야외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딸아이가 마당에서 주워 테이블 위에 놓았다는 울퉁불퉁한 돌에는 글자 두 개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 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