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살하라" 거역하고 480명 살린 그, 동상으로 서다

입력 2012.07.24 03:27

구례경찰서 안종삼 前 서장 동상 오늘 제막식
좌익서 전향한 보도연맹 480명 사살하라는 상부 지시 어기고 모두 풀어줘
이후 인민군 잔당 소탕 공세워

6·25가 발발한 지 한 달째 되던 1950년 7월 24일 오전 11시 전남 구례경찰서 뒷마당. 좌익운동 혐의로 경찰서에 구금 중이던 국민보도연맹원 480명이 집결해 있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운동에 연관됐던 사람들을 전향시켜 조직한 반공 단체. 연단 밑으로는 경찰서 간부들이 늘어서 있고, 전투복에 권총을 허리에 찬 안종삼(당시 47세) 서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섰다.

"이제 모두 죽는구나." 안 서장을 바라보는 보도연맹원들은 공포로 떨고 있었다.

이틀 전 안 서장은 상부의 긴급 지시를 받았다. 인민군은 전주를 거쳐 남원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구금 중인 보도연맹원 480명을 즉각 사살하고 후퇴하라." 풍전등화에 몰린 전쟁 초기 상황에서 남로당의 봉기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 서장은 이후 48시간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얼마 전 여순사건으로 구례군민이 좌·우익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보복의 악순환을 겪은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단상에 오른 안 서장이 좌중을 빙 둘러보더니 호흡을 가다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러분, 나는 지금 내 목숨과 맞바꿔야 할 중대한 결의를 한 순간입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은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모두 방면합니다. 국가를 위해 다시 한 번 애국의 기회를 줄 테니 나라에 충성하십시오. 오늘 이 조치로 인해 내가 반역으로 몰려 죽을지 모르지만 혹시 내가 죽으면 나의 혼이 480명 각자의 가슴에 들어가 지킬 것이니 새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선량한 대한민국 백성으로 말입니다."

보도연맹원 480명을 살린 안종삼 전 구례경찰서장(위). 구례경찰서는 안 전 서장 공적을 기리기 위해 24일 경찰서 마당에서 동상 제막식을 갖는다. /구례경찰서 제공
폭탄선언이었다. 안 서장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상부의 지시를 거역하고 보도연맹원을 석방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이들도 귀를 의심했다. 한참 후에야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린 이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안 서장님 만세! 이게 정말입니까?" 480명이 모두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어떤 이는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했다. 경찰관들도 모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안 서장의 결단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3개월 뒤 그가 돌아왔을 때 구례는 다른 지역과 달리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용단이 '피의 보복'으로부터 군민을 구한 것이다. 이에 감복한 그는 영전을 사양하고 다시 구례경찰서장을 자원했다.

이후 안 서장은 공산당의 잔당을 소탕하고 치안을 회복하는 데 힘썼다. 그는 그 공로로 총경 승진과 함께 지리산지구 경찰전투사령부 정보참모에 임명됐다. 1951년 4월 구례군민은 떠나는 안 서장의 공덕을 칭송하는 10폭짜리 병풍과 시 한수(恩深洞庭湖 德高方丈山·선생의 은혜는 동정호처럼 깊고, 덕은 방장산같이 높다)를 선물했다. 그의 아호 '호산'은 이 시구의 끝 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안 총경은 이후 경찰직을 떠나 1956년 제2대 전남도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77년 타계했다.

안 서장의 공적을 기리는 동상이 구례경찰서에 세워져 그가 480명의 목숨을 살린 지 꼭 62년이 되는 날 제막된다. 24일 경찰서 마당에서 열리는 제막식에는 주민과 경찰관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앞서 구례경찰서는 지난 2월 곽순기 서장을 단장으로 기념사업추진단을 구성, 추모사업을 진행해왔다.

동상은 좌대를 포함, 5.9m 높이에 청동 재질로 제작됐으며, 좌대 옆면에 안 서장의 연보와 업적을 소개하는 글을 새겼다.

기념사업추진단은 동상 제막에 이어 현충시설 지정과 국민훈장 추서 추천 등 추모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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