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해마다 막대한 양을 수입하던 천연가스와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차세대 자원으로 개발을 시작한 셰일가스가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 구도를 바꿔놓을 태세다. 그동안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화석에너지 자원 시장에 천연가스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뛰어들면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자원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신(新)냉전이 시작되고, 그동안 석유를 앞세워 중동 지역이 누려온 위상도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동 전략도 장기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러, 자원 놓고 신(新)냉전
지난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은 187.2조㎥로 조사됐다. 이 중 러시아가 44.8조㎥를 보유해 가장 많았고 이란이 29.6조㎥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유럽 전체 가스 소비량의 25~30% 정도를 담당하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지난 2006~2007년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 정치권이 친(親)러시아 성향으로 돌아서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전체 매장량이 천연가스와 맞먹는 셰일가스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이 같은 구도에 균열이 생길 전망이다. 아비에제르 터커 텍사스대 에너지연구소장은 지난 13일 워싱턴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셰일가스를 두고 새로운 냉전(冷戰)이 벌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미국과 러시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앞세워 주변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면, 이제는 셰일가스와 천연가스를 놓고 양측이 진영(陣營) 싸움을 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폴란드는 새로운 냉전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폴란드는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60% 이상을 외국, 특히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에 매장된 셰일가스 규모는 5조3000억㎥ 수준으로 이 나라가 향후 3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현재 대다수 유럽 국가에는 일정 규모의 셰일가스가 매장돼 있어 일부 국가는 셰일가스가 상용화되면 언제든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텍사스대 터커 소장은 러시아가 셰일가스 채굴 과정에서의 환경파괴적인 측면을 부각해 유럽 국가들의 셰일가스 개발을 늦추려고 "직간접적으로 홍보회사와 환경단체를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중동 철수 가속화하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최근 미국 내 셰일가스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중동에 대한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1977년부터 2011년까지 중동에 투입한 총 군사비는 9조달러로 전체의 53%를 차지한다. 미국이 중동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것은 1970년대 오일쇼크가 계기였다. 그러나 당시 30%에 육박했던 미국의 중동 석유 의존도가 현재 22%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중동에 대한 군사비 지출을 줄여 셰일가스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고 미국 경제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장기적으로 셰일가스가 석유와 천연가스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중동 국가들을 약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란의 경우 현재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로 인해 석유·천연가스의 수출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셰일가스 개발이 본격화되면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리더라도 주요 수출국인 유럽에서 판로를 찾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는 국제사회의 규제가 아닌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이란이 핵개발을 위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라이스대학 공공정책연구소의 에이미 자페 박사는 "셰일가스가 석유 시장을 잠식하게 되면 전반적으로 중동은 더 가난해질 것"이라며 "석유 수입이 크게 줄면 이 지역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