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 암환자가 기증한 가발, 새로 입원한 암환자가 구입 "빨리 나아서 나도…"

입력 2012.07.21 03:23

[신촌세브란스병원 자선가게 '세·움'… 사연있는 물건 나눔 릴레이]
암 투병하며 살 빠져서 헐렁해 못 입게 된 옷, 유방암 수술한 환자가 내놓은 브래지어 등…
기증자·구매자 종일 붐벼… 수익금은 환자들 위해 사용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4층에는 특별한 가게가 있다. 약 7㎡(2평) 정도 되는 크기에, 옷·화장품·가발·음료수 등 물건 300여점을 파는 이 가게의 이름은 '세·움'. '암환자를 사랑으로 세운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30일 문을 열었고, 환자들이 물건을 기부하면 그 기부한 물건을 또 다른 환자가 판매한 뒤 그 수익금으로 암환자를 돕는다.

가게 입구에 놓여 있는 가발 3점은 2004년 갑상선암을 앓다 지난해 완치 판정을 받은 신선희(44)씨가 기증한 것이다. 그는 24세 때부터 가발 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다 35세 때부터 독립한 가발 가게 사장님이었다. 신씨는 "암환자들이 '내가 암환자구나'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때가 머리가 빠질 때"라며 "아내의 민머리를 쓰다듬는 남편의 손길을 볼 때, 항암 치료 때문에 20세를 갓 넘긴 여대생이 삭발하고 펑펑 눈물을 쏟는 것을 볼 때마다, 완치되면 꼭 암환자를 위한 가발을 만들겠단 결심을 했다"고 한다. 보통 가발은 두피에서 안 떨어지도록 접착력에 신경을 쓴다면, 암환자 가발은 최대한 자극이 적도록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 신씨는 실제 그 약속을 지켰다. 지난해 11월 신씨는 갑상선암 완치 판정을 받자마자, 인모(人毛)가발 1개와, 가모(假毛)가발 2개를 만들어 '세·움'에 기증했다. 신씨는 이후에도 한 달에 3점씩 정기적으로 가발 3점을 기부한다.

지난 1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4층에 있는 자선 가게 ‘세·움’에서 환자와 그 가족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팔을 다쳐 입원한 길모(10·가운데)양은 인형을, 길양의 엄마(오른쪽)는 옷을 골랐다. 판매 금액 중 절반은 암환자 치료비로, 나머지는 암환자 가족을 위한 여행비로 쓰인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신씨의 가발 중 하나는 지난해 11월 유방암 판정을 받고 1차 항암치료까지 마친 홍모(37)씨에게로 갔다. 남편과 함께 가게를 찾은 홍씨는 여러 가발을 써보다 갈색 단발머리 가발을 골랐다. 홍씨는 "2차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머리가 더 빠질 것 같아 가발을 구매하러 왔다"고 했다. 홍씨의 남편 박모(47)씨는 "이 가발 기증한 사람도 암환자였는데 완치가 됐대. 우리도 꼭 완치돼서 다시 가발 기부하자"고 아내의 손을 잡았다.

2년째 유방암을 앓는 지모(38)씨는 갈색 커트 머리 가발을 구매한 후, 자신도 브래지어 2개를 기증했다. 지씨는 유방암 2기로 오른쪽 가슴을 완전히 절제하고, 3번째 항암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웹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지씨는 예쁜 속옷을 구매하는 것을 좋아해 한 달에 2∼3번은 속옷가게에 들러 쇼핑을 하곤 했다. 그러나 2010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이후, 더는 일반 브래지어를 입을 수 없게 됐다.

지씨의 브래지어는 양모(57)씨가 구매했다. 양씨는 병원에서 고관절 수술로 입원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양씨는 병원에 올 때마다 자선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해 간다. 집 근처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도 굳이 이곳을 들러 산다. 자원봉사자가 브래지어 기증자의 사연을 전해주자, 양씨는 볼펜을 꺼내 '환자 응원 메시지함'에 넣을 쪽지를 적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쁜 속옷의 주인이니 얼굴도 아주 예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른 완쾌하세요. 좋은 기증 고맙습니다."

지난 6월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은 이모(43)씨도 면바지와 청바지 4점을 내놓았다. 이씨는 지난 2009년 다니던 직장에서 실시한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완치되는 사이 몸무게는 7kg이, 허리는 2인치나 줄어 있었다. 헐렁해진 바지를 버리려던 이씨는 자선 가게를 떠올렸다. 아내는 아이와 자선 가게에 갔다 돌아올 때마다 "나중에 우리도 완치해 병원을 '졸업'하게 되면 '졸업선물'을 주고 가자"고 했다. 이씨는 가장 새것 같은 자신의 바지 4점을 세탁한 후, 곱게 다림질까지 해 자선 가게에 기증했다.

이씨가 기증한 바지는 대장암 아내를 둔 김모(42)씨가 구매했다. 아내 병간호에 쇼핑할 시간도, 정신도 없다는 김씨는 "대장암 완치자가 기증한 옷이라니, 이 옷을 입는 내게도 '아내가 완치되는 행운'이 왔으면 좋겠다"며 "나랑 허리사이즈도 딱 맞는다"고 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여는 세·움에는 하루 평균 70명이 드나든다. 지금까지 팔린 물건은 7000여점, 수익금은 3500만원 정도다. 이 금액 중 절반은 암환자 치료비로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암환자 가족을 위한 여행비로 쓰인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