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 하면 떼돈 버는 줄 알고 의사들이 다 몰려들었어요. 결국 수술비 덤핑까지 벌이고 공멸을 자초하고 있습니다."(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
"지금 성형외과 중에 흑자 나는 곳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10%가 안 돼요. 힘겹게 버티다 곧 줄도산 옵니다."(성형외과 전문의 이모씨)
끝없는 호황을 누릴 줄 알았던 성형외과 병원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산부인과와 가정의학과, 내과 등 다른 분야 의사들까지 성형수술 시장에 뛰어든 데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수술비가 대폭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불황까지 이어져 환자 증가도 주춤하고 있다. 성형관광과 원정 수술 등 중국 덕분에 그나마 연명하는 성형외과가 태반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가슴 성형을 잘한다고 알려진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 A씨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다. 일부 성형외과에서 700만원쯤 하던 가슴 수술비를 작년 하반기부터 절반 수준인 350만원으로 내렸기 때문. A씨는 지금까지 수술비를 할인해 주지 않았으나 환자가 크게 줄면서 수술비 인하를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A씨는 "가슴에 넣는 보형물인 코젤의 원가가 130만~150만원, 마취비 40만원 등 기본 비용이 300만원에 육박한다"면서 "350만원이면 병원 측에 남는 게 없을 뿐 아니라 재수술 요구라도 들어오면 엄청난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눈 성형 전문의로 알려진 B원장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일부 병원들이 120만~200만원가량의 눈 수술비를 60만원으로 내렸기 때문. B원장은 "눈뿐만 아니라 가슴, 코, 지방흡입 등 거의 전 분야의 성형 수술비가 절반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이 수술비로는 자본력이 탄탄한 병원을 제외하곤 살아남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수술비 인하 경쟁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로 개원한 대형 성형외과나 지방 병의원, 자금난에 몰린 병원들이 수술비 '덤핑'을 주도하고 있다. 의사회 관계자는 "의사를 끌어모아 크게 병원을 차린 뒤 가격 파괴와 홍보력을 내세워 일단 환자부터 많이 유치하자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을 쓰는 곳이 많다"며 "이는 결국 질 낮은 의료 서비스로 모든 성형외과의 몰락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턱의 위치나 모양을 변형시키는 양악수술의 경우 3년 전만 해도 2000만원을 넘었으나 작년부터 1000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졌고, 일부에선 700만원을 받겠다고 홍보한다"면서 "자칫 사망에 이르는 고난도 수술을 병원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병원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가격 할인에 나선 이유는 늘어난 성형 병원들 때문이다. 현재 성형외과 전문의가 개업한 병의원은 1000여곳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3000~4000개의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주요 과목으로 두고 있다. 보톡스나 필러, 레이저치료 등 간단한 시술을 해주는 곳까지 더하면 전국적으로 1만5000개 이상의 병원에서 성형 시술을 다루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아과에서 아기 엄마의 피부 레이저 시술을 해주는 곳도 흔하다. 전국 병의원이 3만개쯤 되는 점을 감안하면 의사 절반 이상이 '성형의사'인 셈.
산부인과 전문의 이모씨는 "산부인과, 내과, 가정의학과를 전공했다가 성형외과를 진료 과목으로 개업한 의사들이 많은데, '막차' 타고 성형수술 시장에 뛰어든 격으로 이들이 환자를 더 받으려면 가격다운 시키는 방법밖에 더 있겠느냐"고 했다. 일부 성형외과에선 50명이 넘는 홍보 인력을 운영하면서 거짓 수술 후기(後記) 등을 올려 네티즌 환자 유치에 나선다고 한다.
환자를 병원에 소개하고 수술비의 15~20%를 받는 '성형브로커'까지 성행하고 있다. 일부 브로커는 룸살롱 여종업원들에게 '뷰티론'이라는 대출과 병원을 알선하고 소개료까지 챙겨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 이런 소개료는 세금 처리를 하지 않다 보니 일부 병원들은 탈세 의혹을 받는다. 사건 가져오는 브로커가 변호사를 주무르는 법조계의 그릇된 관행이 성형의료계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중국 성형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고 중국 출장수술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점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국내 의료계가 혼탁해지면서 중국인 상대 성형시장도 같이 물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환자를 모집해오는 에이전트 측이 국내 병원과 중국인 환자 사이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성형외과 의사 정모씨는 "일부 에이전트는 중국인 관광객이 내는 돈의 절반을 가져가고 병원 몫은 20%에 그친다"면서 "의료사고가 많고 경험이 부족한 의사가 국내 최고 수술진으로 둔갑해 중국인들에게 소개되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중국 최고 상류층의 경우 한국 의사를 현지로 불러 수술을 받는데, 이때 중국 환자가 부담하는 돈은 한국 수술비의 10배쯤 된다고 한다. 눈 쌍꺼풀 수술비로 1500만원 이상을 부담하는 중국 환자 입장에선 당연히 한국의 유명 의사가 오는 줄 알지만 일부 에이전트들은 자기 몫을 늘이기 위해 '초보 의사'를 소개하고 있고, 결국 의료사고로 이어져 국가 망신까지 시키는 사례가 있다고 성형외과의사회 측은 전했다. 중국 원정 수술의 경우 의사 몫은 환자가 내는 금액의 10~20%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형외과와 의료영역이 겹치는 피부과나 안과 역시 병원끼리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르고 있다. 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성형병원 중에 앞으로 1년을 버티기 어려운 곳이 많다"면서 "병원 구조조정이야 불가피하게 됐지만, 수술비 덤핑으로 의료 서비스가 부실해지면서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수술비 인하 경쟁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시각은 나쁘지 않다. 가슴 확대 수술을 계획하고 있는 이모씨는 "덤핑 수준이면 곤란하겠지만 병원 경쟁으로 수술비가 내려가면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거 아니냐. 오히려 옛날에 수술비가 너무 비쌌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