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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칼럼

[홍준호 칼럼] 김대중이 돌아본 박정희

  • 홍준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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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07.17 23:27

    1999년 대구 방문한 대통령 DJ
    '하면 된다는 자신감 심어주고 새로운 눈 뜨게 한 朴대통령, 국민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
    야당이 박정희 시대 論하려면 DJ 어록부터 읽고 수준 높여라

    
	홍준호 논설위원
    홍준호 논설위원

    김대중 대통령(DJ)의 말이 길어졌다. 신현확 전 총리 등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추진해온 '박정희 사단' 32명 앞에서 그는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처음부터 "나는 맹세코, 정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반대했지만 사람 박정희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도) 인간이기에, 과거의 정적(政敵)을 증오까지 했던 걸 넘어 추모하고 기리는 사업을 협의하는 자리에 오게 되니 참으로 감개가…"라며 말문을 열었다.

    DJ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그는 대선에서 이기고 1년 반이 지난 1999년 5월 업무 보고를 받으러 대구에 갔다가 신 전 총리 일행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 후 13년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올 초에야 문을 연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의 건립 방안을 처음 구체적으로 꺼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찬반(贊反)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나는 민주주의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 대통령은 경제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와서 보니 두 가지를 병행해야 했다."

    당시는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를 맞아 수술대에 누워 있을 때였다. 외환 위기를 넘어설 해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주문(呪文)처럼 되뇌던 DJ는 그날도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함께 안 했기 때문에 정경 유착, 관치 금융, 부정부패로 경쟁력을 잃고 외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 비판은 그걸로 끝이었다.

    "공인(公人)의 삶은 전부 다 박수받거나 전부 다 비판받을 순 없다. 박 대통령은 6·25 이후 실의(失意)에 빠진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 서구 국가처럼 된다. 큰 공장을 짓고 우리 물건을 만들어 세계에 팔 수 있다. 고속도로도 놓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국민을 그렇게 만든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 근대화를 이룬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하나같이 가슴 아픈 일만 있었는데 그런 가운데 박 대통령은 국민 마음속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근대화를 이룬 것도 있지만 국민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하고 확신감을 갖게 해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공이 크다. 역사에서 재평가받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200년 역사의 미국 국민은 마음속에 대들보 같은 지도자로 워싱턴·제퍼슨·링컨·케네디 같은 사람을 갖고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런 지도자는 세종대왕·이순신 정도만 말하고 있다. 이제 박 대통령은 역사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는 "과거 박해도 받았지만 다 청산하고 다시 화해하고 다시 한 번 제 입으로 그분을 재평가하여 기념사업을 하는 것은 나에게도 뜻깊은 일"이라면서 "이 일이 국민 사이에 사람을 아끼고 지도자의 좋은 점을 따르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조선일보가 당시 DJ의 이 발언을 크게 보도하자 한쪽에선 "김대중의 입을 빌려 독재자를 칭송하려 한다"고 했고, 다른 한쪽에선 "영남과 보수층을 공략하려는 김대중의 전략에 말려들었다"고 했다. JP는 최근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DJ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DJ에게 협력하는 조건으로 요구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DJ 나름의 계산은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정치적 계산 때문에 오랜 정적에 대해 '역사 속에서 존경받을 지도자'란 헌사(獻辭)까지 곁들이면서 기념관 건립에 앞장섰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너무 나간 것이다.

    DJ는 신 전 총리에게 "선거 때 표를 달라고 그러는구나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박정희 기념관을 짓겠다는) 내 생각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그는 JP와 손잡기 5년 전인 1992년 대선 때도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며 "사후(死後)에라도 박 대통령과 화해하러 왔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을 되돌아볼 때 DJ는 훗날 자신에 대한 역사의 평가까지 염두에 두고 박 전 대통령을 역사 속에 자리매김시키려 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DJ의 박정희 시대 평가를 접하는 느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박정희 시대를 집권자 정반대편에서 온몸으로 겪은 DJ는 이미 13년 전에 그 시대를 역사 속으로 넘겨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박정희 시대를 역사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고자 한다면 DJ 어록부터 꺼내 읽기 바란다. 그래야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5·16은 쿠데타다, 아니다' 하는 50년 전 수준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13년 전 DJ의 눈높이로부터도 한 단계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박근혜 의원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온 '반(反)박정희 세력'을 아버지 시대와 달리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를 숙고하면서 DJ 어록을 들여다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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