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 학위가 없는 학사(學士) 출신 2명이 한양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13일 오후 한양대 제2공학관 3층에서는 표정훈(43)·이권우(49) 교수가 다음 학기 시작할 첫 수업을 준비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4일 교수 임명장을 받은 둘의 최종 학력은 '대졸'. 지금까지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박사 학위 이상 소지자' 등의 조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2010년 연세대가 학사 출신 이기태(64)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교수로 임용한 것 외에는 국내 대학에 이런 전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정훈·이권우 교수는 유명한 '책쟁이들'로, 동양사·철학 등의 고전과 신작에 대해 서평을 쓰고 강연하는 일을 해왔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표 교수는 '하룻밤에 읽는 동양사상' '탐서주의자의 책'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등 서평집과 인문학 서적을 썼다. 2004년부터 1년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 실행위원으로 일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평전문잡지 '출판저널' '독서광장' '책과 인생' 등에서 기자·편집장을 지냈다. 이 교수는 인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융합한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저서로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호모부커스'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영화관에서 글쓰기' 등이 있다.

최근 한양대 교수로 채용된 이권우(왼쪽부터), 엄정식, 표정훈씨가 교수연구실에서 얘기 나누며 웃고 있다. 이권우·표정훈 교수는 최종 학력이 ‘대졸’이어서 대학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양대가 올해 초 기초융합교육원 교수 채용을 계획하면서 확정한 조건은 딱 한 가지였다. "학력이나 연령과 상관없이 '전문가'를 모셔오자."

몇 개월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적당한 인재를 찾기 위해 공을 들였다. 초기에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석사 학위는 있어야 하지 않나"는 반론도 있었지만 곧 '전문가면 된다'는 대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표정훈·이권우 교수와 함께 5년 전 서강대에서 퇴임한 과학철학 분야 대가 엄정식(70) 교수를 선발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표씨와 이씨는 수천권의 책을 읽고 분석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고, 다양한 계층의 대중에 알려온 분들이니 그야말로 우리 취지에 딱 들어맞는 전문가였다"고 했다.

표 교수는 "석·박사 학위도 없고 아직도 교수라는 직함이 어색하지만 학교 밖에서 쌓은 경력을 인정해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전공이 다양한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강의해야 할지 몹시 설렌다"면서 "고전을 읽으면서 지금의 사회문제와 연결지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는 9월부터 운영되는 기초융합교육원은 인문학과 기초과학 등 다양한 전공을 연계해 고전(古典) 읽기와 토론 위주의 교양과목을 만들고 수업하는 기관이다. 한양대 측은 "기존 교양 교육은 주로 저학년 위주로 편성돼 '학점 채우기'식으로 인식되곤 했다"며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한두 과목씩 꾸준히 수강하면서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창의성을 높일 수 있게 해주기 위해 기초융합교육원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석좌교수로 임용된 엄정식 교수는 "철학과 고전은 모든 학문에서 일종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며 "이제는 발전하는 과학 기술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