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사는 주부 박정미(가명·53)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딸(31)을 시집보내며 서울 시댁에 400만원이 넘는 이바지 음식을 보냈다.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 업체는 서울 강남에 있는 A가게. 시부모가 "신부를 보려고 친척들도 오시니까, 이바지 음식을 제대로 해오면 좋겠다"며 직접 전화번호를 알려준 업체였다.
박씨는 이바지 음식 주문하려고 서울까지 가야 할지 고민했다. 전화로 상담하니, 업체 직원이 갈비찜·삼색단자·전복찜·대하찜·쇠고기안심편채·밑반찬 5종·인삼정과·과일 바구니로 이루어진 '기본 세트'를 추천했다. 전복찜(15미)은 55만원, 모둠전은 50만원이나 했다. 박씨는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사돈이 원하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화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고가(高價) 이바지는 일부 잘사는 계층의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바지 문화는 중산층과 일부 서민층에도 영향을 끼친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층과 사회 지도층부터 거품이 잔뜩 낀 이바지 문화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게만 강남… 내용물은 다른 데서 만든다
본지 취재 결과 강남에서 유명한 집으로 소문난 곳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는 재래시장 음식을 사다가 포장만 바꿔 파는 경우가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직원들에게 사복(私服)을 입혀 서울 시내 이바지·폐백 음식점 90곳의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에 참여했던 서울시 직원(44)은 "가게에 가서 '예비 신부 이모'라고 고객 행세를 하자, 직원들이 '혼례는 일생에 한 번 하는 건데, 좋은 걸로 하라'며 '친정어머니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어 정직하게 판다'고 했다"면서 "나중에 보니 전부 사탕발림이었다"고 했다. 상당수 업체가 영세 업체에서 만든 음식을 가져와 포장만 으리으리하게 바꿔서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수입산 재료를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조사팀이 "왜 유통기한·원산지·가격 표시가 없느냐"고 묻자, 직원들은 "시댁에 보낼 음식에 그런 거 붙여서 보내는 사람도 있느냐. 국내산 재료로 만드니 안심하라"고 했다. 이후 조사팀이 창고를 급습해보니 마른오징어 등 음식 재료가 들어 있는 종이 상자에 '중국산'이 찍혀 있었다. 또한 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난 재료로 떡을 만들어 판 업체가 있는가 하면, 전화·인터넷상으로는 서로 다른 가게인데 알고 보면 한 업체인 경우도 있었다.
조사관들이 "동대문구에 있는 가게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왜 인터넷 사이트에는 강남 주소를 써놓았느냐"고 추궁하자, 업체 주인이 "공교롭게도 마침 주소를 이전하는 단계"라고 얼버무렸다. 당시 실태조사를 총괄했던 강석원 조사 담당관은 "'41년 경력의 요리사' 'TV 방송 출연' 등의 허위 문구로 소비자를 현혹하면서 실제로는 건강진단도 받지 않은 직원 2~4명이 가내 작업 수준으로 작업하는 곳까지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는 조리시설 안에 애완견이 뛰어다니는 곳을 포함해 90곳 중 10곳의 주인을 형사입건했다.
◇원가는 10만원도 안 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취재팀은 국내 최대 웨딩 서비스 네트워크(예물·예단 전문점들이 가입한 회사) '아이웨딩'의 추천으로 서울 강남에서 10년 이상 영업해온 베테랑 업주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바지·폐백 음식은 먹으려고 하는 음식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음식"이라며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안 하면 시어머니한테 욕먹는다'고 권하면 불안해서라도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업체 중에는 시장에서 10마리에 2만~3만원 하는 마른오징어로 '오징어 닭(마른오징어로 닭 모양을 만든 것)'을 만든 뒤 35만원을 받는 곳도 있었다. 곶감 7개로 '곶감 오림(곶감으로 꽃 모양을 만든 것)'을 만든 뒤 15만원 받기도 했다. 또 "시할머니가 계시면 구절판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꾸 메뉴를 추가하라고 부추겼다. 구절판 10인분 추가하는데 30만원을 받았다.
☞이바지
신부가 신랑 집에 예단으로 가져가는 음식이다. '잔치하다'라는 뜻의 '이받다'에서 유래했다. 신랑 집에서 결혼식 손님들을 대접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뜻에서 신부 어머니가 만들어 보냈다. 이바지에는 과거 얼굴도 안 보고 혼례를 하던 시절 '신부는 이런 음식들을 먹고 자랐습니다'라는 뜻도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