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중요합니다. 때론 시각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한 권의 중요한 책'이 되고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책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독특한 활자와 예술적인 삽화로 구성된 아름다운 책이 뿜어내는 매력은 서치(書癡)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이 아름다운 '박물관'들을 한데 모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달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문을 연 '한길 책박물관'엔 한길사 김언호(67) 대표가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아름다운 책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실린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그리고 1623년 출간된 셰익스피어 희곡집 초판을 복간(復刊)한 한정판(왼쪽부터).

책박물관엔 17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초판 복간(復刊)본부터 출판의 황금기인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저작까지 400여권의 희귀본이 전시돼 있다. 두툼한 종이에 정교하게 삽화를 그려넣은 고서부터 판화에 뿌옇게 채색을 넣은 근대서적까지 출판물의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태피스트리(그림을 짜 넣은 직물 ), 벽지 등으로 만들어진 출판물도 전시돼 있다.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출판인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켐스콧 프레스(Kelmescott Press) 컬렉션도 관람할 수 있다. 이 컬렉션은 모리스가 1891년 설립한 출판사 켐스콧 프레스에서 간행한 셰익스피어의 시집,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시인 제프리 초서의 '초서 작품집' 등 66권의 희귀본으로 북디자인 역사상 가장 탁월한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그는 켐스콧 프레스에서 직접 다양한 활자체를 만들고 종이와 잉크를 개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 켐스콧 프레스는 120~500권 정도만 한정판으로 출간했고, 국내에서 이 '예술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한길책박물관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구스타브 도레(1832~ 1883)의 판화 삽화로 구성된 '돈키호테' '라퐁텐 우화집' '신곡' 등은 정확한 소묘와 극적인 구도로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이다. 1797년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윌리엄 터너의 대형 판화집, 후안 미로·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삽화로 구성된 '성경'도 눈길을 끈다. 19세기 유럽의 정치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획전시도 있다. 당시 프랑스는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고 인쇄기술이 발달하며 수백 종의 시사풍자 인쇄물이 간행됐다.

김 대표는 "선구적인 책의 장인들이 만든 '아름다운 책'의 박물관은 오늘날 다양한 분야의 문화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실험공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고서뿐 아니라 근대 우리나라 작가 500여명의 육필원고도 전시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