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하면 독립해야 한다.'
서울 중구청 김태도(57) 도시디자인과장이 세운 자녀교육 원칙이다. 딸 유란(30)씨는 학자금 대출로 대학을 마치고 공무원이 됐고, 자기 월급으로 갚아 나갔다. 작년 가을, 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려왔다. 김 과장은 "부모 신세 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허락하겠다"고 했다.
상견례 때 김 과장은 사돈에게 "자식이 장성하면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야 하니, 도와주지 말자"고 했다. 사돈은 조용히 듣다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알겠습니다."
김 과장은 충북 괴산에 살다 13세 때 공부가 하고 싶어서 어머니 쌈짓돈을 들고 서울로 갔다. 막노동해서 고학으로 고등학교 마치고 공무원이 됐다. 아내는 "그래도 딸이 결혼하는데, 어떻게 한 푼도 안 주느냐"고 했다. 김 과장은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딸 내외가 나중에 더 잘 산다"고 했다.
젊은 부부는 신랑 저축 4000만원에 대출 3000만원을 보태 서울 개포동에 700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다. 결혼식 비용도 하객들 식비만 양가 부모가 반씩 내고, 나머지 비용은 유란씨 저축으로 해결했다.
주위에서 "주워온 딸이냐"고 했다. 김 과장은 "솔직히 딸이 '이번만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젊은 부부는 "앞으로 열심히 저축해 3년 안에 융자를 갚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김 과장에게 보여줬다. 김 과장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유란씨는 "어려서부터 '자기 힘으로 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지만 정말로 '네 힘으로 결혼하라'고 하실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처음엔 서운했는데, 지금은 아빠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어요. 제 힘으로 결혼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