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결혼한 임현수(가명·28· 회사원)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회사 구내식당만 가면서 아끼고 아껴 4000만원을 모았다.

임씨 부모의 재산은 퇴직하고 마련한 지방의 집 한 채가 전부다. 임씨는 부모 도움 없이도 결혼하려고 애써 모았고,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흐뭇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 준비에 돌입하자 3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이 물 새듯 사라졌다. 자기 저축에 남편의 저축 6000만원을 보태 1억원대 신혼집을 알아봤지만, 서울에서 그 가격대 전셋집 찾기는 쉽지 않았다. 시댁에 손 벌렸지만 시댁의 지원은 2000만원이 한계였다. 결국 김씨 커플은 6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집은 어쩔 수 없으니 다른 것에서 최대한 씀씀이를 줄이자고 마음먹었다. 김씨는 발품을 팔고 꼼꼼히 정보를 확인해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까지 패키지로 싸게 제공하는 예식장을 예약했다. 예물도 서울 종로 귀금속 가게에서 두 사람이 합쳐 200만원 이내가 되게 골랐다. 그러고도 결혼식에만 3000만원 가까이 썼다.

김씨는 "결혼에 들어가는 돈이 내 연봉보다 많아지니 이불, 냄비, 그릇 같은 살림살이를 사는 것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집값이 올라가고 결혼식 비용이 늘어나면서 서민층도 세 명 중 한 명이 결혼에 1억원 이상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올해 5월 30일~6월 1일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3년 내 결혼한 신혼부부 300명을 조사한 결과 양가 부모님의 자산을 합쳐 6억원 미만인 부부 세 명 중 한 명(32.2%)이 "결혼할 때 1억원 이상 지출했다"고 답했다. 자녀들이 보태는 돈이 거의 없을 경우, 서울에 집 한 채 있는 서민은 자식 한 명 결혼시킬 때마다 재산의 15~20%를 쓰는 셈이다.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가 평생 모은 재산을 자기네 결혼 때문에 한순간에 허물어야 하는 사실을 부담스럽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우리는 남들보다 적게 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지 조사에서 서민층 부부 세 명 중 한 명(35.6%)은 "양가의 형편에 비해 결혼 비용이 과했다"고 대답했고, 절반 이상(50.8%)이 "그래도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 비해 덜 쓴 편"이라고 했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집단의 평가에 예민하고 사회적 이상향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이 심하다"면서 "이 때문에 당사자들의 경제 수준에 맞추기보다 '남들이 이렇게 하더라'며 사회적 기대 수준에 맞추다 보니 부유층의 결혼 문화를 중산층이, 중산층의 결혼 문화를 서민층이 따라가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성렬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서민이 맨 먼저 나락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중산층 이상은 개인연금 등을 통해 어떻게든 노후 대책을 강구할 수 있지만, 서민층은 자식을 결혼시킬 때 대출을 받고 자식들도 빚을 안은 채 시작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신현숙(가명·57)씨는 지난 5월 결혼한 큰아들 최정철(가명·31·회사원)씨를 생각하면 대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반반이다.

최씨 부부의 결혼에 들어간 돈은 집값을 포함해 1억5000만원가량.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을 걱정하던 아들은 "어머니 도움 안 받고 저희 힘으로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 6000만원에 대출을 더해 서울 변두리의 단출한 다세대주택을 신혼집으로 구했다.

신씨는 "내가 모아놓은 돈이라곤 이것저것 다 더해도 2000만원 정도라서 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면서 걱정이 많았다"며 "자기들이 모은 돈에 대출까지 했는데, 집값을 빼고도 내가 모은 돈의 두 배가 드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신씨는 아직 여자친구도 없는 막내아들(26)의 결혼이 벌써 걱정이다. "막내가 결혼할 쯤이면 집값도 물가도 지금보다 더 오를 텐데…. 서른이든 마흔이든 내 아이가 '엄마,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부모 된 마음으로서는 모르는 척할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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