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가진 친구들과 만나면 집은 으레 남자가 해와야 하는 줄 알아요. 그러면서 '사돈이 예단 요구해서 버겁다'는 얘기만 해요. 아들 가진 제가 듣다못해 한마디 했어요. '그럼 당신이 집값 내겠다고 해.' 아무 말 못하죠. 아들 가진 엄마들이 예단 받는다고 나쁘다고 하는데, 밍크코트 받아봤자 1000만원짜리예요. 이쪽에선 집값으로 1억을 대는데…."

2일 아침 본지에 게재된 '모두가 괴로운 한국병(病) 결혼예단 없애자' 기사를 읽고 50대 후반 여성 독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서울 강북에 산다는 그는 "아들 가진 엄마들끼리 만나면 '그까짓 샤넬 가방 안 메도 좋으니 그 돈으로 집값 보태면 좋겠다'고 한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후 한국의 결혼비용 변화를 추적해보니,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전국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평균 결혼비용은 양가 합쳐 1999년 7639만원에서 2012년 2억808만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예물·예단·함들이 비용도 13년 만에 933만원에서 2608만원으로 세 배 올랐다.

예물·예단·함들이 비용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내는 항목이다. 여자는 이와 별도로 살림살이도 장만한다. 신부와 신부 부모 입에서 "결혼하기 힘들다"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힘겨운 건 역시 신랑 부모와 신랑 쪽이다. 1999년에는 신부 쪽이 2968만원 내고, 신랑 쪽이 4662만원 냈다. 신부가 10원 낼 때 신랑이 17원 낸 셈이다. 반면 2012년에는 격차가 확 벌어졌다. 신부 쪽이 5101만원을 내고, 신랑 쪽이 1억5707만원을 냈다. 신부가 10원 낼 때 신랑이 30원 내게 된 것이다.

이런 불균형이 생긴 이유는 남자가 주로 부담하는 집값이 그 사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만난 신부들 중에는 시부모가 집값을 모두 대준 사람들은 "고맙긴 하지만, 남자가 집 해오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했다. 그 집을 신랑 힘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시부모에게 기대겠다는 얘기였다.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자라 2010년 전문직 남편과 결혼한 김혜리(가명·33)씨는 "솔직히 우리 또래는 연애하는 단계부터 사람도 보지만 그 사람 부모도 본다"고 했다.

서울 사립대 전임강사 이소라(가명·34)씨는 "나 자신이 서울 강남에서 자랐기 때문에 '결혼도 당연히 강남에서 자란 남자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 "선 봐서 결혼했는데, 선은 상대방 부모를 보장하니까 사기당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이씨는 시댁에서 서울 인근 신도시에 대형 주상복합아파트(230㎡·70평)를 사줬다. 그 보답으로 친정에서 시어머니 밍크코트와 샤넬 가방, 시아버지 맞춤 코트, 최고급 이불·반상기·은수저 세트와 현금 2억원을 보냈다. 시댁에서 친정으로 절반(1억원)을 돌려줬다.

반면 시댁이 어려워 집값을 상당 부분 분담한 신부들은 '뭔가 손해 봤다'는 느낌을 마음속 깊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단에 대해서도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 비정규직 프리랜서 유지영(가명·31)씨는 시댁 형편이 어려워 신혼집 월세 보증금 2000만원을 친정에서 대줬다. 그 대신 월세 70만원은 다달이 시댁에서 내주고 있다. 유씨는 예단으로 현금 500만원을 시댁에 보냈다.

유씨는 "집 사오는 남자와 결혼한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친정 집에서 돈도 더 냈건만 왜 여자라는 이유로 예단까지 보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가 억울했다"고 했다.

아들 가진 부모들 마음엔 이런 풍조가 괘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10년간 아들 3형제를 차례차례 장가 보낸 박명자(가명·64)씨는 "지금 사는 집 말고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둔 부모라 해도, 전세값을 마련해야 세입자를 내보내고 그 집을 아들 줄 텐데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아들 하나 장가보낼 때마다 살림이 휘청거리는데 딸 가진 엄마들은 분담할 생각을 안 하니, 아들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면 "거저먹으려 든다"는 말을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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