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교수의 딸 박정연(가명·29)씨는 100억원대 자산가 아들(회사원)과 결혼했다. 박씨는 친구들에게 "시어머니가 6억원짜리 아파트를 사줘서, 친정부모가 신랑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찌로 뽑아줬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박씨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많이 받은 만큼 체면상 웬만큼은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웬만큼'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몰라 박씨 어머니는 사돈 집에 현금 5000만원을 보냈다. 이와 별도로 남편 몰래 2000만원을 대출받아 샤넬 가방과 이불·반상기·은수저 등을 보냈다.
박씨는 "친정 부모님이 '저쪽에서 6억원짜리 집을 사줬는데 이 정도로 될까 싶다'고 자꾸 걱정하시길래 눈물이 났다"고 했다.
본지가 최근 4년간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혼주 133명을 취재해보니 양가(兩家)에 오가는 '집과 예단의 거래'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결혼에 돈이 깊이 개입하면서 생겨난 한국 사회의 독특하고도 해괴한 '예단의 공식'이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아들 가진 고소득층 부모는 서울 강북이나 강남에 3억원 혹은 그 이상을 들여 신혼집을 구해줬다. 그들의 배우자는 집값 10%에 해당하는 현금을 사돈 집에 보냈다. 현금과 별도로 이불·반상기·은수저 세트 500만~1000만원어치, 500만~700만원짜리 시어머니 샤넬 가방, 시아버지 맞춤 양복, 700만~1000만원짜리 신랑 롤렉스 시계도 보냈다. 시어머니에게 밍크코트와 패물 세트를 사줬다는 사람도 많았다.
2009년 결혼한 전업주부 박미진(가명·34)씨는 "시댁에서 수도권에 30평대 아파트를 사주셨고, 친정에서 그에 상응하게 현금 5000만원을 예단으로 보냈다"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밍크코트 사러 갔을 때 소매가 짧은 걸 권했더니 '얘야, 난 긴 게 좋구나' 하시더라"고 했다.
서민·중산층 부모는 아들 저축을 합쳐 서울 강북에 1억~2억원 안팎의 전셋집을 얻어줬다. 그 답례로 신부와 신부 부모는 이불·반상기·은수저 세트 200만~500만원어치와 집값 10%에 해당하는 현금을 사돈 집에 보냈다. 시어머니에게 루이뷔통 등 100만~200만원 안팎의 명품 가방을 선물하고, 다이아몬드가 아닌 기타 귀금속으로 반지·목걸이를 해줬다. 본지가 올해 3월 결혼 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의 310쌍을 조사한 결과 신부 부모가 순전히 예단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평균 1261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