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韓日)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사전에 고지(告知)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가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에 부닥치자 협정의 공식 발효를 보류했다. 이 바람에 일본과의 공동 협정 서명식 한 시간 전에 부랴부랴 일본 측에 사과나 다름없는 양해를 구해야 했다.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장관·국방장관·외교안보수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부터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해왔다.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군사 분야에서도 양국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는 둘째 치더라도 여전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런 나라와 군사 협정을 맺으려면 그에 따른 장·단기 전망과 득실을 냉철히 따져야 한다. 국민 공감대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국방부가 협정을 추진하다 여론이 좋지 않자 외교부를 대신 앞세우고 두 협정 중 군사정보보호협정만 우선 추진키로 하면서 내용은 그대로 둔 채 협정 이름에서 '군사'란 두 글자만 뺐다. 국민을 속이려 한 것이다. 그리곤 보통 안건들과는 달리 차관회의도 거치지 않고 심의 안건으로 사전에 공개하지도 않다가 국무회의 현장에서 즉석 상정해 통과시켰다. 국민에겐 사전 사후 아무 설명이 없었다. 정부가 사안의 민감성을 알고 눈속임을 시도했다는 증거다. 국민은 까막눈이라서 그렇게 해도 들통이 안 날 거라고 생각했다면 정부 수준이 한심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군사협정의 민감성과 외교적, 군사적 측면의 복합적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나 파악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이라 이번 사안 역시 그 세계의 득실 차원에서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득실이란 기업의 손익 계산과는 달리 당장 장부에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 요소까지 두루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정치와 안보 문제는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외교안보 장관과 참모들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사설] 민주당, 서울대 폐지 다음엔 또 뭘 없애자 할 건가
[사설] 새누리, 변호사만 특혜 주는 '변호사 정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