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협정 연기] "영토도발 하는 일본과 무슨 군사정보협정이냐"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12.06.30 03:04

    "MB식 不通이 빚은 망신" 비판… 김황식 총리는 국민에게 사과
    日과 협정 왜 해야 하는지 국민 설득도 없이 밀실처리 강행·… 결국 여론에 항복

    서명 연기… 무슨 일 있었나 - 외교부 어제 오전까지 통과 자신
    협정 全文 보도자료까지 배포… 새누리당 보류 요청에 金외교, 서명 직전 연기

    외교부는 29일 오전 8시 21분 출입기자들에게 '한일 정보보호협정 서명 예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오전 11시 34분에는 국문과 영문으로 된 협정문 전문(全文)도 제공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오후 4시로 예정된 이 협정 서명을 그대로 밀어붙일 태세였다.

    그러나 이날 오전엔 이미 민주통합당 등 야당들은 이 협정을 비공개로 처리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는 이유로 김황식 총리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고, 새누리당에서도 "이 상태에서 협상을 체결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었다. 일본과 광복 후 첫 군사협정을 체결하려는 데 대한 여론의 반감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부, 뚜렷한 논리 제시 못해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10분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해 협정 체결 보류를 요청하자, 이때에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분주히 움직였다. 결국 협정 체결 1시간이 채 안 남은 상태에서 '서명식 연기' 결정이 내려졌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이 2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강행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작년 초 일본과 정보보호협정 및 군수지원 협정 등 2개의 군사협정을 추진키로 결정한 뒤 줄곧 이들 협정이 꼭 필요한 이유와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대북(對北) 핵·미사일 정보 공유가 유일한 이유였다. 그러나 일본과 이같은 협정이 없어서 지금껏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거나 그로 인해 위기를 초래한 사례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했고, 이 협정이 체결되면 무엇이 얼마나 더 나아질 것인지에 대한 전망도 명확하지 않았다. 외교부와 국방부 당국자는 "한때 공산국가였던 러시아와도 맺은 협정인데 일본과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민주통합당 추미애 최고위원(왼쪽)이 2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국무총리실을 방문해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오른쪽)에게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한 전문가는 "왜 이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아직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영토 도발을 일삼는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한다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여기에다 국무회의 통과가 비밀리에 이뤄졌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국민적 반감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MB(이명박)식 불통' 다시 도졌다"

    야권에선 이 협정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를 1905년 을사늑약을 주도했던 '이완용'에게 비유하면서 맹공세를 폈다.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MB(이명박)식 불통' 다시 도졌다"는 여론이 급속히 번져갔다. 한 전직 정부 관료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 지지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정부가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독선에 빠진 것 같다"며 "무리하게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협정의 좋은 취지마저 퇴색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협정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마저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국무회의 통과 사흘 만에 '여론의 벽'에 막혀 허둥지둥 포기한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다.

    이날 협정이 전격 연기된 뒤에도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국회를 최대한 설득해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란 인식을 갖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국방부, 외교부 모두 협정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 같은 문제에 대해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밤 보도자료를 통해 "절차상의 문제로 의도하지 않게 국민에게 심려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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