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난 늙은 아빠, 젊은 건축가

  • 임영환·홍익대 건축학부 교수

    입력 : 2012.06.27 23:31

    임영환·홍익대 건축학부 교수
    일요일 늦은 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 책가방을 챙겨주다 갑자기 유성펜으로 쓴 글씨를 지워야 하는 일이 생겼다. 매일 유성펜으로 기입해온 아이의 도서 대출카드가 마지막 칸까지 채워진 지 며칠째, 급기야 담임 선생님의 경고성 쪽지가 도착했다. '내일까지 꼭, 꼭, 꼭, 지워 오세요!' 하지만 집안 구석구석을 아무리 찾아봐도 아세톤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인터넷을 뒤져 물파스가 같은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직은 쓸 만한 아빠인 것 같다.

    첫째와 일곱살 터울로 태어난 딸아이는 모든 면에서 나를 즐겁게 한다. 저녁 늦게 피곤에 지쳐 들어온 나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준다. 가끔은 이 아이가 없을 때는 내가 웃기는 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늦둥이인 탓에 유치원에 갈 때는 꽤나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 아빠와의 수업시간에 내가 늙은 아빠임을 확실히 실감한 탓이다. 가끔 내 품에 안긴 딸아이가 "아빠는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아?" 하며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말에 깜짝 놀라기까지 한다. 나이 든 탓에 아이 학교에 쉽게 가지 못하는, 말로만 듣던 그런 아빠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해 온다.

    내 나이 이제 마흔넷.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첫인사 역시 "임 교수, 언제 흰머리가 그렇게 많아졌어?"다. 누가 봐도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지만, 나는 아직 다행히 '젊은' 건축가다. 워낙 건축가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 탓에 건축업계에서는 40대 중반까지 젊은 건축가로 인정해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시상하는 '젊은 건축가상' 신청 자격 요건도 만 45세까지다. 척박한 우리의 건축 환경 중 유일하게 나를 만족시키는 요소다. 적어도 2014년까지는 공식적으로 '젊은 아빠'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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