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말(2002년)부터 연료 채우고 대기… 南함장 성격까지 파악"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12.06.25 03:07 | 수정 2012.06.26 08:16

    제2연평해전이 우발적이라는 DJ정부 인사 주장, 北 8전대(당시 도발 부대) 출신 탈북자가 허구성 입증
    2002년초부터 복수 노려 - 김정일, 서해함대사령부 방문
    강등됐던 1차해전 패전 책임자 훈장 주며 복권 시켜줘
    북한군에 깜깜한 南 - 北은 南장교들 인적사항과
    무전병 타전속도까지 아는데 南은 너무 아는게 없어 충격
    北 제2연평해전 피해 적어 - 사망 3명, 부상 5~6명에 불과… 정부 '30명 사상' 발표와 차이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해군 8전대에 근무한 탈북자 김일근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은 길게는 5개월, 짧게는 1개월 전부터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 도발을 준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설 즈음 김정일 방문으로 사기충천

    김씨에 따르면 북한은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을 패전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전투에서 전사자 17명, 부상자는 60~70명에 이르렀다"며 "사건 직후 8전대장 강영호 대좌(대령과 준장 사이)와 역시 대좌인 정치위원이 상좌(대령)로 강직됐고, 한동안 해군사령부와 서해함대사령부에 불려가 (자아)비판서를 쓰는 등 혼이 났다"고 했다. 이후 8전대원들은 교전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2002년 2월 초 음력설 즈음 김정일이 서해함대사령부(남포)를 방문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김정일은 "서해 해상전투(제1연평해전)에서 위훈을 세운 해병들을 잊지 않겠다"며 "걸린(지장이 되는) 문제를 최우선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등됐던 전대장(戰隊長)이 대좌로 복귀했고 전사자 17명을 포함해 21명에게 '영웅' 칭호가 내려졌다. 강 전대장을 포함해 당시 부상병들에겐 '국기훈장'이 돌아갔다. 가라앉아 있던 8전대의 사기는 이날을 기해 크게 올라갔다고 한다.

    당시 오전 6시에 전투경보 신호

    김씨에 따르면 도발 준비는 5월 말부터 시작됐다. 평소엔 출항하는 함정에만 연료를 가득 싣는데 이때부터 정박·대기하는 함정에도 "무조건 연유(기름)를 만적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함정 탑재장비들을 100% 검열하는 항해준비검열이 연일 계속됐고, 통상 열흘 안에 끝나는 '함선 원성능 회복판정'도 한 달 내내 이어졌다. 김씨는 "북한군은 기름이 워낙 부족해 보통 3분의 1 정도 채운다"며 "5월 말부터 다들 '곧 뭐가 터져도 터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교전 당일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전투경보 신호가 떨어져 모든 전대원이 철모 쓰고 함선에 들어가 전투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우발적 사건'론은 허구

    김씨 증언은 우리 5679부대가 교전 2주 전과 이틀 전에 감청한 북의 도발 징후(SI·특수정보)가 정확한 정보였음을 뒷받침한다. 이 정보는 지휘계통에 따라 보고됐지만 군 수뇌부가 무시했고, 일선부대들에는 "월드컵 기간 중 긴장 관리를 잘하라"는 지시만 내려갔다.

    어머니의 마르지 않는 눈물 10년이 지나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23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전사자인 고(故) 황도현 중사의 어머니가 아들의 비(碑) 앞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대전현충원 제공
    또 교전 이튿날 북한이 '우발적 사고였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자 당시 정부는 이를 그대로 믿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는 최근 "우리 선박이 (작전) 통제선을 넘어간 잘못이 있다"고 말해 '우리 해군의 잘못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씨 발언 중에는 당시 우리 군의 '전과(戰果) 부풀리기'를 시사하는 내용도 있다. 제2연평해전 당시 북측 사상자가 10명 이하란 것이다. 김씨는 "684호의 사령탑(함교)이 포격을 받아 함장 김영식 대위, 기관장, 조타수가 전사했다. 시체 3구를 직접 봤다"며 "부상자도 5~6명이었다"고 했다. 북측 사상자가 약 30명이었다는 우리 군의 설명과 큰 차이가 난다.

    김씨는 "684호는 사령탑이 포를 맞긴 했지만 수동 조타(操舵·조종)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3~4개월 수리한 뒤 전사한 함장 이름을 따 '김영식 영웅호'로 개칭했다"고 했다.

    "우린 남측 함장 성격까지 알았다"

    김씨는 우리 부대를 대상으로 안보강연을 다니면서 "북한군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수시로 개최되는 '적군 시간'에 정찰국에서 만든 '적군강연자료'가 배포된다. 남조선 함선들의 제원, 함장 이름과 성격, 군관(장교)들에 대한 정보, 심지어 무전병의 타전 속도까지 적혀 있다"고 했다.

    김씨는 "무전병 타전 속도를 알면 우리가 거짓 교신 등을 통해 얼마든지 남조선 함선들을 교란시킬 수 있다"며 "남조선 함장이 인사(人事)가 나 교체돼도 며칠 뒤면 모두 파악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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