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쳐들어온다" 알린 罪… 62년만에 재심

입력 2012.06.20 03:12 | 수정 2012.06.21 08:19

[재미교포 홍윤희씨]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 선고… 누명 벗으려 전쟁사 자료 찾아
애플먼 메모서 무죄 증거 발견

6·25 전쟁 때 북한군의 '9월 총공격'을 제보하기 위해 귀순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팔순의 재미교포가 62년 만에 법원의 재심(再審) 결정으로 누명을 벗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원범)는 1950년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5년을 복역한 홍윤희(82)씨가 낸 재심 사건에서 "홍씨의 주장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재심을 개시했다고 19일 밝혔다.

홍씨는 1950년 6·25 직전 스무 살 나이로 중사 계급장을 달고 육군본부에서 일했다. 장교가 되고 싶었던 그는 군사훈련 입소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서울에서 6·25를 맞았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숨어 지내던 홍씨는 살기 위해 북한군에 들어갔다. 그는 "일단 북한군에 섞여 남쪽으로 내려간 뒤 틈을 봐서 국군에 합류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19일 조선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홍윤희씨가 지난해 발견한 메모를 들고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북한군 신분으로 낙동강 전선인 경북 군위로 내려온 홍씨는 8월 31일 우연히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총공격한다"는 북한군 장교의 말을 엿듣게 됐다.

이에 홍씨는 9월 1일 새벽 북한군을 탈출해 국군에 총공격 정보를 알렸다. 하지만 9월 11일 홍씨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헌병에 체포됐다. 홍씨는 수사받으면서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군사법원은 홍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955년 석방됐지만, 홍씨에겐 '빨갱이' 딱지가 붙어 있었다. 홍씨는 1973년 미국 이민을 택했다. 미국 생활 20년 만인 1990년대 초부터 홍씨는 스스로 자신의 딱지를 떼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사 자료를 찾아 헤맸다.

홍씨의 누명을 풀어줄 열쇠는 2011년에야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홍씨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받은 한국전쟁사 자료인 '로이 애플먼 컬렉션'을 살펴보다가 9월 총공격 계획 제보자는 자신이고, 미군이 이를 중요 정보로 취급했다는 정황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다. 애플먼은 6·25 전쟁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메모에는 '간부후보생 홍이 인민 의용군에서 탈출해 1950년 9월 1일 새벽 아군에 귀순, 북한군이 열흘 안에 부산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총공격을 감행할 계획임을 알렸다'고 돼 있었다. 홍씨는 "CD에 저장된 영문자료를 하루 6~7시간씩 보다 '홍'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곤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고 말했다.

홍씨는 작년 6월 이 메모를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애플먼의 메모는 홍씨의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라고 밝혔다. 재심 결정문을 받아든 홍씨는 "지난 60여 년의 세월이 생각나 법원 복도에서 흐느껴 울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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