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10년] 최윤희 해참총장(당시 해작사 작전처장) "北도발 직전, 긴장조성 말라는 지시만 받았다"

    입력 : 2012.06.19 03:44 | 수정 : 2012.06.19 20:55

    ["우리 잘못 아니다" "나는 말 못한다" 당시 안보 수뇌부의 책임 떠넘기기]
    김동신 당시 국방장관 - "합참이 우발적 도발로 보고 NSC서 계획 도발 결론" 반복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 - "합참이 미쳤다고 우발적 도발로 보고했겠나"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 - "NLL 가까이 갔다는 이유로 해군 작전실수 문책하려 했다"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 이틀 전 우리 군 대북 통신감청부대(5679부대)는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북 경비정과 해군부대 간 교신을 감청해 군 수뇌부에 보고했으나 군 수뇌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북에 기습공격을 받고 6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직후 합참 등 군 당국이 도발 성격을 '단순 도발' '계획적 도발' 중 어느 것으로 판단하고 보고했는가에 대해서도 당시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 간에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제2연평해전 발발 10년을 맞아 당시 김대중 정부와 군의 책임을 놓고 다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 수뇌에서 우발적 도발에 무게 둔 분위기"

    정부는 연평해전 상황 종료 직후인 2002년 6월 29일 오후 1시 30분 정세현 당시 통일장관, 김동신 국방장관, 최성홍 외교장관, 신건 국정원장,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차 NSC(국가안보회의) 회의를 가졌고, 이어 오후 3시에 열린 2차 회의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이날 회의 내용에 대해 김동신 전 국방장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거듭 "합참이 우발적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으나 NSC 회의에서 토의를 거치면서 계획적 도발로 평가를 내렸다. 이것이 팩트다"라고 했다. 합참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은 본지 통화에서 "교전 직후라 상황 파악이 정확히 안 된 상태였으나, 당일 오후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이 언론 브리핑에서 '계획적 도발로 본다'고 밝혔는데, 합참이 미쳤다고 NSC에 우발적 도발 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보고를 했겠느냐"고 했다. 김 전 장관이 상황을 오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NSC 회의에 참여한 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교전 다음날 북에서 핫라인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를 볼 때 평양(북 정권)에서 지시한 게 아니란 차원에선 우발적 도발로 볼 수 있었다"며 "당시 지원 함정 없이 참수리호가 NLL(북방한계선) 가까이 접근한 작전상의 실수를 문제 삼아 해군에 대한 문책 필요성까지 논의된 게 기억난다"고 했다. 우리 정권 핵심부는 북 정권 차원의 개입 증거가 없다는 차원에서 우발적인 도발로 보고 오히려 북한 도발로 피해를 입은 우리 해군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었다는 얘기다.

    중요 도발 정보 묵살 논란

    당시 5679부대는 제2연평해전 발생 2주일여 전인 6월 13일과 교전 이틀 전인 27일 우리 고속정을 목표로 '발포'라는 용어가 사용된 'SI 정보'를 국방정보본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13일 보고는 장관에게 가는 보고서에서 빠졌고, 27일 보고는 국방장관을 거쳐 예하부대로 하달될 때 이 내용이 삭제된 채 '단순 침범'이라는 내용만 남았다.

    연평해전 발발 2주 전 북의 도발 징후를 포착했던 첫 보고가 '단순 침범'만 남은 것에 대해 김 장관이 정형진 당시 정보본부 정보융합처장을 강하게 질책해 정 처장이 예하부대 배포용 보고서를 수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정 전 처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한철용 당시 5679부대장은 자기가 (보고를 다 했다며) 잘했다고 하고 김 전 장관은 (삭제를 지시한 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데…내가 아는 것을 전부 이야기하고 싶지만 정보를 다룬 사람으로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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