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4시쯤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사)다음누리 사무실. 이영성(72·여) 대표는 올해 다음누리의 다문화가정 장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각 학교가 보내온 추천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성남 최초의 여성 시의원과 2차례의 경기도의원, 경기도 여성정책국장 등을 지낸 이 대표는 지난 2005년부터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봉사단체인 다음누리를 이끌고 있다.
강원도 춘천 출신인 그는 1963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16년간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79년 직장을 그만두고 성남으로 온 뒤로는 10여 년간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중 1990년쯤 헌옷 모으기 운동을 통해 이씨는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골목을 지나다 보면 멀쩡한 옷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버린 옷을 깨끗이 빨아 기부하거나, 싸게 팔면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지 않는 옷을 기부 받았고, 2년 동안 컨테이너 16개 분량의 옷을 모아 동남아시아 지역에 기부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문제에 눈을 뜬 그는 1992년 보궐선거로 성남시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경기도의원을 거쳐 경기도 여성정책국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이 부분에는 여성이 참여해야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지난 2005년 다음누리를 설립해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독거노인, 가정폭력 피해여성 등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서울 화양동에서 연쇄방화를 저지른 혐의로 붙잡힌 러시아계 다문화가정 출신 정모(18)군의 사례를 언급하며, 대부분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저개발국 여성들이 가난을 면하려고 한국인과 결혼해 국내로 들어오면서 형성돼 왔다. 그는 "다문화 가정 부부의 나이 차가 15년 이상인 경우가 많아 자녀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이면 남편들은 고령으로 일할 능력이 없어진다"며 "남편 대신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이주여성들이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그 아이들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가정, 조손가정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은데 '왜 다문화 가정만 돕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혼·조손 가정 아이들은 한국말이라도 할 줄 아는데, 다문화 가정은 그마저도 어렵기 때문에 더 먼저 도와야 한다"고 했다.
아직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 대부분이 초등학생이거나 청소년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표면화되지 않았지만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앞으로 10년 뒤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다문화 가정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2009년에는 몽골·캄보디아·필리핀·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10개국 다문화가정 초등학생 30명으로 구성된 '엔젤 크레용 합창단'을 창단했다. '크레용'이란 이름은 한 가지 색보다는 여러 색이 모인 크레용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로 그가 직접 지었다. 그는 "아리랑 등 민요와 우리 동요를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합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엔젤 크레용 합창단은 지난 3일 안산에서 열린 '제2회 전국다문화가족 합창대회'에서 전국 63개 팀 중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누리는 지난해 합창단 아이들을 포함해 도내 다문화 가정 청소년 100명에게 24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올해는 220명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이씨가 경기도 각 학교를 돌며 펼치고 있는 '사랑의 동전 모으기'를 통해 모금하고 있다. 사랑의 동전 모으기는 각 학교에 나눠준 저금통에 학생들이 쓰고 남은 동전을 넣어 기부하는 방식이다.
그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친구이자 이웃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게 하자는 취지"라며 "작은 동전 기부를 통해 학생들이 나눔을 배우고,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다음누리는 현재 광주시에 외국인근로자 및 다문화가족 센터와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위한 지역아동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어머니의 나라와 한국을 잇는 징검다리가 될지, 한국 국적을 가진 이방인이 될지는 우리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