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하니 말씀이 지나치시네요"를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어떻게 될까. 대구 출신 래퍼 MC메타가 말한다. "고만 씨부리라." 그렇다면 "너 오늘 되게 촌스럽다"는? 부산 출신의 경인방송 박준철 PD가 답한다. "끌베이가."
경상도 사투리가 인기를 끈다. 사뭇 붐을 이루고 있다. TV에서 인터넷에서 '경상도 사투리 배우기'가 유행이다. 사투리를 내세운 개그맨, 사투리로 된 노랫말, 사투리만 쓰는 방송 출연자까지, 억세고 거칠고 무뚝뚝하던 경상도 사투리가 재미있고 새롭고 귀여운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는 지금 경상도 출신 개그맨들이 이끌어가다시피 한다. 박영진·김영희의 '두분 토론'부터 '촌스런 남자' 양상국까지 사투리 코너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동영상 '1루수가 누구야' 역시 의문문과 평서문의 억양이 같은 경상도 말의 특성에 착안한 코미디다.
◇'개콘'의 경우: 직설화법의 시대
오랫동안 개그계는 '충청도 계보'가 대세였다. 충남 서천 출신인 '뽀빠이' 이상용을 필두로 최병서 최양락 남희석 황기순 등이 개그 코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괜찮아유"가 사라지고 "행님아"가 등장하더니, "궁디를 주 차뿌까(엉덩이를 걷어차버릴까보다)" 같은 말이 유행어가 됐다. 현재 개콘에서는 김원효·양상국·허경환·류정남 같은 경상도 개그맨이 최고 인기다.
'개콘' 서수민 PD의 해석은 이렇다. 충청도 개그 시대엔 '은근하게 에둘러 말하는 화법'이 유머 코드였으나 지금은 직설화법으로 바뀌었다. 그는 "지금 시청자는 기본적으로 샤우팅(소리지르기)이면서 직설적인 경상도 사투리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데뷔한 경상도 출신 개그맨 김영철 역시 서 PD가 발굴했으나 당시 그의 주무기는 사투리가 아니었다. 서 PD는 "만약 김영철이 지금 데뷔했다면 사투리를 주 소재로 썼을 것"이라고 했다.
전북대 국문과 이태영 교수는 경상도 사투리 인기의 '일등공신'으로 강호동을 꼽았다. 강호동의 인기가 경상도 사투리의 인기로 확장된 것을 '파장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PD 역시 강호동의 "행님아"가 경상도 개그의 본격적 등장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강호동 이전에는 사투리 쓰는 MC가 드물었는데, 강호동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에 매우 익숙해졌다"며 "전 국민이 경상도 사투리에 별다른 저항감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라고 말했다.
◇'권력의 언어'에서 '친근한 말투'로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줄곧 경상도 출신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었던 한국 현대사에서 경상도 말은 '권력의 언어'였다. 이 때문에 경상도 말은 희화화나 조롱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반면 1970~8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모든 범인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고 할 만큼 전라도 사투리는 '홀대'받았다. 그러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상도 사투리가 권위적 이미지를 벗었다는 해석도 있다.
이태영 교수는 그러나 "김대중 정부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됐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도로망과 인터넷의 발달로 지역 간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사투리에 대해 익숙하고 관대해졌다"고 했다. 이를테면 도로변에서 '정구지 찌짐(부추전)'이란 간판을 보면 예전에는 낯설었는데 요즘엔 '경상도에 왔구나!'하고, '대수리탕(다슬기탕)'이란 문구를 보면 '전라도구나!'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거리감 소멸'의 예라는 것이다.
'개콘' 서 PD도 '권위적 언어의 종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두분 토론'의 박영진 말투가 경상도 언어의 전형적 권위주의"라며 "5년 전만 해도 그 개그가 먹히지 않았겠지만, 경상도 말에 대한 시선이 너그러워지면서 개그의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언어의 권위가 허물어지면서 비로소 유머 코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왜 경상도 사투리인가
MBC경남은 지난 설 특집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콱 마! 궁디를 주 차뿌까!'를 방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경상도 말의 독특한 성조(聲調)가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2의 2승, 2의 e승, e의 2승, e의 e승'을 정확히 구별해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은 경상도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경상도에서 숫자 2는 저조(低調), 알파벳 e는 고조(高調)이므로 쉽게 구분되며, 이것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매우 재미있게 들린다는 설명이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라는 방언 연구서를 펴낸 경북대 국문과 백두현 교수는 "'니 어데 가노?'는 가는 곳을 묻는 의문문이지만 '니 어데 가나?'는 가는지 아닌지를 묻는 의문문"이라며 "성조에 따라 말하는 바가 다르고 종결어미 '노'와 '나'가 달리 붙는 것이 경상도 말의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종결어미 차이가 석보상절(釋譜詳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세종 때까지 있었던 우리말의 특색이라고 설명했다.
경상도 말의 또 다른 특징은 발음의 생략과 압축이 많다는 것이다. 래퍼 MC메타는 "곰팡이 궁둥이 정강이 놈팽이/ 뭐가 이응이 그렇게 많노/ 정개이 곰패이 놈패이 지패이 문디 쌍디 주디 궁디 간띠"라고 노래했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고 솩쌤' 네 글자가 된다는 말도 있고, 경상도에서 은행 대출을 받을 때 대출신청 사유란에 '짜치서(쪼들려서)'라고 쓴다는 농담도 있다.
또한 다양한 수사(修辭)도 경상도 말의 특징이다. MC메타는 '매우·아주·몹시·무척'이 경상도에서는 '억수로·한거석·허들시리·천지삐까리로·몽창시리·한빨띠·대끼리·댓바이'로 늘어난다고 노래했다.
◇경상도 말을 통한 사투리의 재발견
인디밴드 '장미여관'은 사투리로 된 노래 '봉숙이'를 발표해 인기다. 그 가사는 "야 봉숙아/ 말라꼬 집에 드갈라고/ 꿀발라스 났드나…못 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 이 술 우짜고 집에 간단 말이고" 하고 이어진다. 케이블 요리 경연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 김소희는 경상도 사투리를 고집하는 심사평으로 유명하다. "끌베이가"를 대유행시킨 박준철 PD는 4년 전부터 유튜브에 '부산말 사투리' 강의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요즘 개그맨들이 부산말의 투박함을 유연하게 만들면서 내 동영상도 인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그는 "부산말과 서울말은 영어와 한국어처럼 완전히 다른 언어"라고 말했다.
방언 학자들은 사투리의 재발견을 매우 환영하고 있다. 백두현 교수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방언이 급속히 없어지고 고향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며 "사투리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는 것이 국어의 속살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