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의 신(神)이 있다면 아마 이렇게 심사했을 것이다. 우선 비문(非文)과 오탈자(誤脫字)가 너무 많은 작품은 눈에 띄는 족족 불지옥으로 보낸다. 다음으로 때깔 싱싱한 고등어 고르듯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작품들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순백의 펄프로 돌려놓는다. 이어 그렇게 살아남은 작품들이 지닌 대중성과 작품성, 그리고 독창성의 점수를 보기 쉬운 백분율로 환산해 첫 페이지에 금 글자로 새긴다. 마지막으로 각 지은이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여 그 영혼이 세간에 회자될 문학적 가치가 있는지 확인한다. 일이 끝나면 심사비를 챙겨 술집의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아쉽게도 우리는 신이 아니어서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꽤 비슷하게 하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담긴 신중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아홉개의 붓''소년, 이야기에 빠지다''리얼리티''혹성탈출'을 최종 논의 대상으로 올렸다. 이어서 다시 오랜 시간의 논의 끝에 '아홉개의 붓'을 당선작으로 올리자는 데 모두의 의견을 모았다.

판타지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최종심에서 당선작을 놓고 토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렬 정재서 박성원 전민희 박형서 김동식 위원.

당선의 영광을 안은 '아홉개의 붓'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소설이었다. 여로 소설의 구조를 취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고대 한국의 토착 언어와 문화로 나름의 고유하고도 독특한 서사적 분위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어떤 작품보다도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작품의 결말부분이 열려 있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작가가 문학의 가장 큰 자산인 상상력을 동원해 어느 미지의 세계를 안정감 있게 구축해낸 점을 가릴 만큼 큰 문제점은 아니었다.

게다가 '붓'의 뜻을 '표현의 도구'로 확장시킨 점과 동양적 판타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 노력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었다.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사위원은 '아홉개의 붓'이 지닌 완성도가 다른 소설들의 그것보다 한층 단단하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최종 논의 대상에 오르긴 했지만 아깝게도 당선을 보류해야 했던 작품들에 관해 간략하게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덧붙이기로 하자. 먼저 '소년, 이야기에 빠지다'는 끝까지 심사위원들을 주저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완성도가 높고,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캐릭터가 안정되지 않은 점, 사라진 도깨비를 찾아 다시 떠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점 등등이 끝내 이 작품의 당선을 도깨비처럼 방해했다. 만약 이 같은 점이 문제 되지 않았더라면 판타지소설 심사의 신도 이 작품을 택했을 것이다.

이어서 성장소설과 SF의 하이브리드인 '리얼리티'의 경우 현실공간과 가상공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 현실에선 나약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강한 주인공이 겪는 내면갈등의 묘사도 뛰어났다. 하지만 요령부득의 도식적인 서사 구조가 마지막까지 상상력의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혹성탈출'은 탄탄한 서사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일반 도서 세 권의 분량에 그만한 미덕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던 게 흠이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이야기 전개 능력에 절제의 미까지 가미한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머지않아 분명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당선작 '아홉개의 붓'을 낸 작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문운이 계속 융성하기를 빈다.

[제4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심사위원회]

장경렬 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
정재서 이화여대교수·문학평론가
김동식 인하대교수·문학평론가
박성원 동국대교수·소설가
박형서 고려대교수·소설가
전민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