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취재팀은 한국에 체류한 지 3개월 이상 되는 26개국 출신의 외국인 100명에게 '한국의 술 문화와 관련된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무엇인가'를 물어봤다. 이 질문의 대답 속에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황당하게' 보이는 우리 술문화의 실체들이 들어있었다.
◇"한국에선 늘 '원샷'을 외친다"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이해 못하는 한국의 술 문화는 '술 강요'다. 주량(酒量)과 의사(意思)에 상관없이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술잔을 비워야 하는 모습을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영국에서 온 존(29)씨는 "영국에서는 아무도 원샷을 하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늘 '원샷'을 외친다"며 "특히 '마셔, 마셔, 마셔. 더, 더, 더' 이런 문화에 질렸다"고 했다. 대학에서 영어수업을 하고 있는 그는 "천천히 마시겠다고 해도 계속해서 강요하는 바람에 기절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10개월 전 왔다는 A(22)씨는 "다 같이 한꺼번에 술을 마셔야만 하는 '파도타기'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고, 독일에서 온 제라드(38)씨는 "독일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한국은 술을 마시려고 모인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인 B(23)씨는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겐 술 강요는 분명 폭력인데, 이런 현상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했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술자리도 외국인들에겐 낯설기만 하다. 미국인 사업가 란(여·52)씨는 "한국인들은 술자리에서 술을 엄청 마신 뒤, 곧장 '2차 가자'고 한다"며 "2차가 끝나면 꼭 3차로 노래방을 가는데, 괜찮다고 사양해도 꼭 노래방을 가야 끝나는 술 문화가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캐나다인 C(여·29)씨는 한국의 술 문화를 "토할 때까지 술 마시는 문화"라고 정의했다.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게 일상인 나라
술 취해 인사불성이 돼 길거리에 구토를 하고, 쓰러지는 모습도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하다. 프랑스에서 10개월 전에 한국에 온 D(여·21)씨는 "한국에 처음 와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놀랐지만 일주일 만에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한국에선 일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어강사인 미국인 스테파니(여·30)씨는 "양복을 입고 길거리에 기절해 있는 사람이 참 신기했다"고 말했다.
3개월 전 한국에 온 미국인 E(여·27)씨는 "만약 누군가 길에서 술에 취한 사람을 볼 때마다 나에게 1달러를 준다면, 한국에선 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술 마시면 무서워지는 한국인들
한국의 술 문화가 외국인들에게 '신기한 현상'을 넘어서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취재팀이 외국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술에 취한 사람과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나요?'란 질문에 21%가 '그렇다'고 답했다.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사람을 보고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외국인도 33%에 달했다.
두바이에서 온 말릭(30)씨는 "한국 술 문화는 한마디로 좋지 않다(no good)"며 "소리 지르고 욕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실제로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도 있었다. 중국에서 온 G(20)씨는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나오다, 옆방 사람들과 부딪혔다"며 "그 사람들이 갑자기 욕을 하고 때렸다"고 했다. G씨는 노래방 주인의 반응이 가장 황당했다고 했다. 노래방 주인은 이랬다. "술 많이 마신 사람이니 참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