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만리장성 확장은 동북공정의 공간적 적용

조선일보
  •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입력 2012.06.11 23:31 | 수정 2012.06.12 06:20

고구려가 쌓은 천리장성을 비롯, 현재 中 영토 안 다른 민족 長城도
'역대 장성'에 넣고 '만리장성' 선전… 땜질식 대응 아닌 포괄적 대책 필요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2012년은 한·중 수교 20주년, 백두산정계비 건립 300주년, 광개토태왕 서거 1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지난 5일 중국의 국가문물국은 '역대 장성(長城)'의 길이가 2만1196.18㎞라고 발표하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6000여㎞였던 장성의 길이가 2009년 명(明) 장성 중심 8851.8㎞로 늘어나더니 3년 만에 기존 만리장성 길이의 3.5배에 달하게 된 것이다. 이미 중국은 2009년 명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산해관에서 압록강 하구 단동시 호산(虎山) 장성으로 바꾸면서 고구려 박작성 유적에 명 장성을 새로 만들어 큰 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런데 이번엔 호산장성에서 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 등 고구려·발해의 영역으로 확장된 엄청난 규모의 장성을 새로 제시하였다.

본래 중국의 장성은 진시황이 흉노 등 유목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장성과 명(明) 영락제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한 이후 몽골·여진족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런데 이번 발표에서 중국은 기존 만리장성에다 현재 중국영토 내에 존재하는 주변민족들이 쌓았던 장성을 모두 망라한 '역대 장성'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여러 왕조들과의 전쟁을 위해 쌓았던 다른 민족의 장성도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으니 이제는 모두 중국의 장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주변 민족들의 장성까지 하나로 묶어 중화민족의 상징인 '장성'이라고 공표함으로써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장성판(版)을 만들어낸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CCTV 등 언론은 '역대 장성'을 '만리장성'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장성판 동북공정'을 완성하고 있다.

추가된 중국 장성에 고구려 천리장성이 포함됐다는 사실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즉 길림성에서 새로 확인된 장성은 노변강토장성(老邊崗土長城), 연변지구장성(延邊地區長城), 통화한장성(通化漢長城) 등 3곳이다. 이중 길림성 덕혜시(德惠市)~농안현(農安縣)~공주령시(公主嶺市)~이수현(梨樹縣)~사평시(四平市)를 거쳐 요령성으로 연결되는 노변강토장성(248㎞)은 시기를 당대(唐代)로 표현하여 당나라 장성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 장성은 고구려 영류왕이 고구려의 부여성(농안일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쌓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이다. 또한 연변지구장성도 고구려·발해 또는 금나라 장성으로 파악된다. 결국 당과의 전쟁을 위해 쌓은 고구려 천리장성 등이 갑자기 중국을 지키는 만리장성의 일부가 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중국의 장성 확대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되었던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사라고 강변하던 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았으며, 2012년에 들어 오히려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관에 입각한 역사논리를 공간적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고구려 등의 장성을 '중화민족의 장성' 속에 포괄함으로써 역사 왜곡을 역사유적에까지 적용하는 일련의 작업이 완성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04년 중국과의 구두합의 이후 중국이 더 이상 동북공정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요령성은 '요하문명론'을 통해 한국의 원류가 '중국의 홍산문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길림성은 '장백산문화론'으로 백두산 일대 고구려·발해의 역사가 만주족의 금·청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 상징조형물과 박물관·공원을 건설하여 동북공정 논리를 홍보·교육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부의 땜질식 대응도 한계에 다다랐다. 중국의 동북공정, '역대 장성'론, 요하문명론, 장백산문화론 등에 포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학술적 논리 개발과 국가적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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