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한현우의 커튼 콜] "가진 건 시간뿐"… 스물넷 이동진의 무한도전

조선일보
  • 한현우
    입력 2012.06.09 03:32 | 수정 2012.06.10 06:54

    독도·히말라야·아마존·美대륙… 세계가 좁다는 이 청년, 최종 꿈은 NASA

    토익이 인생 전부인가_대학에 앉아만 있기 지루해 마라톤 도전 3개월 죽어라 뛰어 3시간 50분 만에 완주 "나도 할 수 있구나, 뼛속까지 바꿔보자"

    20대를 불태우리라_철인3종 대회 해낸 뒤 내친김에 해병대 독도까지 헤엄치고, 아마존·히말라야… 최근 美대륙 자전거 무전여행까지 블로그엔 "매일매일 기막히게 특별했다" 

    실패한 도전_어릴 적 꿈 배드민턴 국가대표 도전 런던 금메달 목표였지만 선수 벽 못 넘어 가르친 감독들 "너 같은 또라이는 처음"

    아직 남은 꿈_ 여행 중 만난 어느 교수가 "네 경력에 좀 더 보태면 하버드 간다" 중·고교 땐 꿈도 못 꾼 하버드大 단독비행 세계일주 성공하면 도전

    무모함이 청춘의 특권이라지만 경희대 3학년생 이동진(24)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평범했던 건축공학과 학생이 히말라야 5700m 봉우리에 오르고, 울진~독도 240㎞ 수영 횡단을 했으며, 아마존 정글마라톤 222㎞를 완주하자마자 자전거로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 특히 자전거 미국 횡단 때는 숙식의 3분의 2를 길에서 만난 사람 집에서 무료로 해결했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 하는 현실이 정말 싫다"며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기회를 찾는 데 나의 20대를 모두 연소(燃燒)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담대한 청년을 지난 4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의 도전이 자전거 미국 횡단입니까.

    "작년 10월 22일 뉴욕 맨해튼 46번가를 출발해 12월 20일 LA 한인타운까지 꼬박 60일 동안 자전거로 미국 6000㎞를 달렸습니다. 중간에 시카고에서 멤피스까지 900㎞ 구간은 버스를 탔고요."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면서요.

    자전거 미국 횡단 때 갖고 다녔던‘글로벌 철인3종’플래카드.
    "60일 중 40일을 여행 도중 만난 미국인들 집에서 잤습니다. 잘 곳을 구해야 할 시간이 되면 길에서 만난 아무나 붙잡고 '나는 대한민국 대학생이고 지금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해주면 내가 경험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짧게는 5분, 길게는 5시간 만에 숙식을 제공해주겠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잘 곳을 찾지 못하면 교회나 공원에서 야영을 했어요. 60일간 숙식에 든 비용이 30만원쯤 됩니다. 자전거와 노트북 수리비까지 합치면 총 80만원가량이 들었어요."

    그의 블로그 '가슴 뛰는 젊은이 미스터 리'를 보면 미국 횡단 첫날 숙소를 구하는 장면이 잘 묘사돼 있다. 해 질 녘 뉴저지의 작은 마을에서 미식축구 경기장을 찾은 그는 그곳에 모인 학부모 10여명에게 숙식을 부탁했으나 모두 거절당한다. 마지막에 그는 한 교회를 소개받아 그 교회 목사 집에서 첫날 밤을 보내게 된다. 그는 "늘 그런 식으로, 달리는 트럭을 세워서 물어보거나 동네에서 세차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룻밤 재워주면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제안해 숙소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미국 횡단 직전인 작년 10월 9일부터 15일까지 브라질에서 열린 '아마존 정글마라톤'에 참가해 정글 222㎞를 완주했다. 총 15개국 45명이 출발한 이 마라톤의 완주자는 11명에 불과했다. 당시 그는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브라질 왕복 항공 티켓과 300만원을 후원받았는데, 미국을 경유하는 이 티켓 덕분에 '자전거 미국 횡단'을 계획했다.

    "미국에 3개월이나 체류할 수 있는 티켓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뭔가 도전해보자고 생각한 끝에 자전거 횡단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같은 과 친구(김현수)가 동행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정글마라톤을 마치고 뉴욕으로 갔고, 친구는 서울에서 출발해 뉴욕에서 만나 여행을 시작했지요." 두 사람의 여행은 40일째인 애리조나주 세도나까지 계속됐다. 그곳에서 두 친구는 "이제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마무리하자"며 각각 다른 루트로 대륙 횡단을 마쳤다.

    ―자전거 미국 횡단도 매우 힘든 일인데 어떻게 숙식을 공짜로 해결할 생각을 했나요.

    “도전할 때마다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 뒤에 얼마나 큰 기회가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도전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 대학생 이동진. 물불 가리지 않는 그의 도전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왼쪽부터 1울진~독도 수영횡단 선상, 2아마존 정글마라톤 출발 모습, 3자전거 미국 횡단, 4히말라야 등정, 5정글마라톤 골인 모습. / 이동진 제공
    "정글마라톤을 마치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 돈이 30만원 정도밖에 없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무전여행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덤빈 거죠. 자전거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달고, 항상 웃으면서 말을 걸었어요. 우리가 거쳐온 곳의 지도와 사진을 보여주며 진심으로 대하면 사람들은 금방 마음을 열었어요. 어떤 사람은 모텔을 잡아주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텔에 가려는 게 아니다. 당신 가족과 이야기를 통해 문화 교류를 하고 싶다'며 사양했지요. 여행 20일 만에 현금을 주는 사람도 만났는데, '밥과 잠자리를 주면 충분하다. 돈은 받을 수 없고 마음만은 받겠다'고 말했더니 그분이 눈물을 흘렸어요. 우리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는 미국 횡단 마지막 날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60일간 버스·트럭·승용차·요트·비행기·캠핑카를 탔고, 노숙자보호소부터 60억원짜리 집에서까지 잤다. 현지인 300여명을 길 위에서 만났다. 정말 매일매일이 기막히게 특별했다'.

    그는 여행 계획 당시 유명 자전거회사 5곳에 제안서를 보내 자전거 협찬을 의뢰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자전거 월간지의 주선으로 국내 자전거회사로부터 자전거와 용품을 후원받았다. 그의 미국 횡단기는 그 자전거 잡지에 현재 연재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이런 도전을 좋아했습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흥사단에서 주최한 남해안 도보 일주에 참가했고, 6학년 때도 인천~강릉 도보 횡단을 했어요. 그때는 도전이라기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가했던 건데 고생을 많이 한 기억이 납니다. 중·고교 때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저의 도전은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결정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대입 재수가 첫 번째 도전이었군요.

    "저는 오지(奧地) 탐험가나 도전자가 아니에요. 고교 때 공부를 안 해서 대학에 떨어졌는데 제게 주어진 길은 세 가지였어요. 재수, 취업, 군대. 그래서 고깃집에서 하루 10시간씩 서빙하는 일을 했는데 너무 힘들고 무의미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 인생의 마지막 공부를 해보자'며 재수를 택했죠. 1년간 친구 한 명도 안 사귀고 하루 17시간씩 공부를 했는데, 대입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원하는 학교는 항공대였지만 시력 때문에 떨어지고 경희대에 합격했죠."

    ―그다음 도전은 무엇이었습니까.

    정글마라톤 완주 후 퉁퉁 부은 발.

    "대학에 들어가 교내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제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고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나를 깨보는 일을 찾고 싶었는데, 앉아서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삶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마라톤이었어요. 남들보다 특별히 운동을 잘한 것도 아니었지만 3개월간 열심히 훈련해서 2008년 마라톤 풀코스에 나갔는데 3시간 50분 만에 완주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죠.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 3개월 뒤에 철인3종 대회를 완주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약하고 소심하고 작은 것도 결정하지 못하던 내가 철인3종을 완주하다니. 그다음 생각한 게 군대였어요. 저는 군대야말로 나를 뼛속까지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병대에 자원해서 포항 1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해병대 자원한 친구들이 나름대로 잘나고 힘세다 하는 친구들이었는데도 도전 의식은 강하지 않더라고요. 해병대 마라톤을 비롯해 힘든 훈련에 모두 자원해서 나갔어요. 전역을 앞두고 히말라야 원정단에 참가하기로 하고 제대 직후 히말라야 K2 옆의 곤도고로라(5700m) 원정을 다녀왔지요."

    ―주로 몸으로 하는 도전을 했군요.

    "몸으로 했지만 제 정신과 육체가 다 바뀌었어요. 마냥 앉아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은 취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지만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은 안 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가는 길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저를 바꾸고 제 인생을 바꾸는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도전을 하면서 휴학을 하려고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교수님이 처음엔 '나는 건축공학과 교수이고 학생들을 건설회사에 취직시키는 사람이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로 젊음을 낭비하느냐'고 하셨어요. 그러나 나중에는 '너에게 이제 대학은 의미가 없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면서 노트북 컴퓨터를 선물해주셨어요."

    ―작년 여름엔 독도까지 수영도 했다면서요.

    "해군에서 주최한 울진~독도 240㎞ 수영횡단팀에 지원해서 다녀왔어요. 총 33명이 번갈아가며 4박5일간 쉬지 않고 헤엄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정글마라톤을 앞둔 훈련의 의미가 강했어요." 그는 울진~독도 수영 횡단과 아마존 정글마라톤, 자전거 미국 횡단을 묶어 스스로 '글로벌 철인3종'이라고 이름붙였다.

    ―모든 도전에 다 성공했습니까.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그렇지 않아요. 자잘한 실패와 좌절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실패는 배드민턴 국가대표에 도전한 것이었어요. 히말라야에 갔다 온 뒤 2010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5개월간 하루 15시간씩 배드민턴 훈련을 했어요. 제 초등학교 때 꿈이 배드민턴 선수였거든요. 부모님이 말리셔서 못했던 것을 '더 늦기 전에 해보자.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하자'고 마음먹고 한국체대, 성남시청, 성남 중부초등학교 배드민턴 감독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그렇지만 10년 넘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의 벽을 제가 몇 개월 만에 넘기란 불가능했지요. 그때 저를 가르친 감독님들은 '배드민턴 경력 30년 만에 너 같은 또라이는 처음 본다'고 했어요. 주변에서도 미친 짓이라고 했고요. 그렇지만 저는 고정관념이란 게 자신의 경험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된다고 하면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배드민턴은 성공할 수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으니 대학 졸업도 늦어지겠군요.

    "저는 20대가 제 안의 가능성에 엄청난 기회를 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20대이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난 뒤 '그때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대학 1~2년 늦게 졸업한다고 낙오자 되는 것도 아니죠.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서 후회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 저를 던져보고 싶어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궁금하거든요."

    ―부모님도 지원해 주시나요.

    "제가 해병대나 히말라야, 정글마라톤에 도전할 때마다 어머니가 말리셨지요. 절대 안 된다고요. 그렇지만 그때마다 저는 부모님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 제게 취업은 행복이 아니다'라고 말이죠. 이제 부모님은 '우리와 너의 삶은 너무 다른 것 같다. 네 뜻대로 해보라'고 하십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히말라야에 함께 올랐던 친구(김일영)와 함께 6월 말쯤 세계 일주를 떠날 겁니다.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는 책을 쓴 코너 우드먼처럼 100만~200만원 정도의 자본금을 갖고 중국이나 인도로 출발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특산품을 다른 나라에 파는 형식으로 총 6개월간 '거래여행'을 할 생각이에요. 과연 우리가 얼마나 흑자를 낼지, 아니면 쫄쫄 굶다가 집에 올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가진 게 시간뿐인 우리는 20대라는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파일럿이 되어 단독 비행으로 세계 일주 하는 꿈을 갖고 있어서 조만간 비행학교에 들어가 조종사 자격증을 딸 겁니다. 그리고 단독 비행 세계 일주 꿈을 이루면 하버드대에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미국 여행 중에 만난 교수님이 '네 경력에 실력만 조금 보태면 하버드대도 갈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중·고등학교 때는 꿈도 꿔보지 못한 것이지만 하버드대에서 전 세계를 이끌어갈 친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버드를 졸업하면 보잉사에 입사하고, 결국엔 나사(NASA)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 이 청년의 꿈이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계획이지만 도서관에서 토익 점수에 매달려 있던 20대가 어느 날 "독도까지 헤엄치고 아마존 222㎞를 달린 뒤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덜 황당하게 들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에게 점심을 사주면서 그가 미국에서 숱한 이로부터 숙식을 거저 제공받은 까닭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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