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폭력을 일삼는 주폭에 대한 경찰의 대처는 한국과 외국이 판이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거나 "가정 폭력은 남의 집안 사정'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작년 5월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모(52)씨는 17년간 자기를 폭행해 온 남편을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 2명은 김씨에게 "부부 싸움인데 두 분이 대화로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하고 권한 뒤, 자기들끼리 "부부 싸움이야. 그냥 가자"고 말했다. 남편은 경찰의 이러한 태도에 더욱 기세등등해져 "(경찰에 신고하다니) 또라이, 미친 X"이라며 김씨를 폭행했다. 이전보다 더 심해진 폭행에 김씨가 끈질기게 경찰을 찾았고, 마침내 남편에게 접근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나 그날 밤 술 취한 남편은 또 창문을 뜯고 집에 들어와 김씨를 폭행했다.

상담센터를 찾은 김씨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경찰한테 따지고 싸우느라 더 지쳤다"고 말했다. 김씨가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이런 신고를 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이었다면 김씨의 남편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미국 대부분의 주(州)가 가정 폭력에 대해 '체포 우선제' 또는 '의무적 구속 정책 및 강제 기소'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행 가능성'만 있어도 경찰이 가해자를 즉시 체포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도 있다. 작년 4월 미국 뉴올리언스 길가에서 부인과 말다툼을 하던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가정 폭력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는데, 부인을 때리지 않았지만 만취한 케이지가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도 가정 폭력 가해자는 체포가 원칙이다. 또 구속 여부에서 피해자의 의사는 고려되지 않는다. 가정 폭력도 '범죄'라는 인식 때문이다. 당사자 간 합의를 종용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독일은 가정 폭력에 대해 '가해자는 떠나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피해자를 보호한다. 독일의 보호 명령 제도는 가해자를 집과 그 주변은 물론이고 피해자가 자주 들르는 장소까지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가정 폭력은 증거 없이 피해자의 증언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은 가정 폭력에 대해선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보호 명령이 가능하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장희숙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정의 일에 개입하는 걸 '남의 일에 끼어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권력이 적극 개입할 때 가정이 유지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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