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임수경이 가야 할 길

입력 2012.06.04 23:06

강철환 조선일보 객원기자·북한전략센터 대표

1989년 남북청년학생축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평양으로 들어갈 '작전'을 세웠다. 세계 여러 나라 청년들이 평양에 몰려들고, 남조선에서 임수경이란 학생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험을 결심했다. 평양에서 국제적 행사가 열리면 평양시는 완전 봉쇄되고 지방 사람들은 국가적 공무를 제외한 일체의 여행증 발급이 중단된다. 이 기간에 여행증 없이 평양에 들어가다 걸리면 6개월 이상 집결소에 수감돼 강제노역을 하거나 심하면 수용소로 갈 수도 있다. 거의 목숨을 건 평양 잠입에 성공한 우리 일행은 멀리서나마 임수경의 모습을 보게 됐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당국이 써준 각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임씨의 모습을 보며 평양의 대학생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당시 평양에는 '임수경 신드롬'이 생겨났다.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갔고, 그의 패션과 머리 스타일은 북한 전역의 청년들에게 모델이 됐다. 나 역시 남한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 깊은 밤에 라디오를 켜고 남한 방송을 듣는 계기가 됐다. 김범룡의 노래 '바람 바람 바람'을 들으며 남조선에 대한 동경으로 벅차올랐던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임수경이 김일성과 부둥켜안았지만, 우리는 그가 독재정권의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남한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김일성 부자(父子) 세습독재도 반대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온 뒤 1992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임수경이었다. 남조선의 청년 민주화운동가들과 북한의 자유화를 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사파들은 당시 탈북 대학생들을 노골적으로 '민족 반역자'라고 했고 조직적으로 괴롭혔다. 남한 대학가에 뿌리 깊게 내린 종북(從北)의 씨앗은 대학을 넘어 대한민국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들은 남한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막연히 북한을 동경하는 대학생들을 파고들어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분별한 충성 맹세와 북한과의 연계는 남한의 386세대를 병들게 했고, 오늘의 비정상적인 진보가 만들어졌다. 김영환씨를 비롯해 당시 주사파의 일부가 북한의 본질을 깨닫고 정상적인 길로 들어섰지만 다수는 아직도 어둠의 길을 헤매고 있다.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를 향한 임수경씨의 폭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대한 애정과 기대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1989년 평양을 방문했던 임수경은 같은 또래 북한 청년들의 미래였고 희망이었다. 그를 통해 '자유화된 평양'을 꿈꾸었고 그래서 우리는 남한을 동경했다. 그런 임수경씨가 1980년대의 주사파 사고방식에 박제화돼 있다는 것이 몹시 서글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임수경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북한 인민을 굶겨 죽이고 노예화한 김씨 부자의 편이 아니라 인민의 편에 서야 하고, 북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선봉에 서야 한다. 그것이 임수경이 가야 할 길이고 나중에 북한 동포들을 만날 때 떳떳해질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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