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조 도둑 잡으러 가던 순찰차 5대 酒暴신고 들어오자 3대는 핸들 꺾어

조선일보
입력 2012.06.01 03:07

취객때문에 도둑·강도 놓쳐

"신촌 2인조 도둑이 여자 혼자 사는 원룸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다 달아났다. 출동 바람."

26일 새벽 2시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지구대 소속 순찰차에 다급한 지령이 떨어졌다. 5대의 순찰차가 일제히 현장으로 몰려갔지만, 도둑이 잡히기도 전에 3대의 순찰차는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술 취한 사람들이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신촌지구대 장구희 경위는 "도둑을 빨리 잡아야 하는데, 경찰들이 취객 뒤치다꺼리나 하러 가야 하니 속이 탄다"며 "112 신고 대응 규정상 도둑을 잡고 있는 중이 아니라면 취객 난동 신고에 먼저 출동하도록 돼 있어 우리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신촌지구대의 이런 딜레마는 매일 밤 전국의 경찰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살인·절도·성폭행 등 5대 강력범죄(47만3966건) 중 37.7%(17만5790건)가 밤 10시~새벽 4시에 일어난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폭행이나 소란을 일으키는 일도 52%(경찰 신고건수 기준 35만129건 중 18만3271건)가 밤 10시~새벽 4시에 몰려 있었다. 취객 신고가 몰리는 시간대와 강력범죄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시간대가 정확히 겹치고 있어, '취객 때문에 강도 놓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유흥가와 대사관 등 주요 시설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지구대는 몰려드는 취객 처리와 방범순찰 업무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서울 이태원지구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지구대는 유흥가인 이태원 한복판에 있으면서 주한 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 장관 저택, 대기업 오너 자택 등이 밀집한 한남동 일대까지 관할한다. 일선 경찰들은 금요일마다 취객으로 홍역을 앓다 보면 다른 업무를 처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태원지구대 이상진 경위는 "술 먹은 사람들과 씨름하다 보면 실제로 강도 등 강력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순찰 활동은 거의 못한다"며 "만취한 사람들은 평소보다 힘이 배는 세고, 목청은 귀를 찢어놓을 정도라서 한 명 처리하고 나면 귀가 윙윙거리고 진이 빠져서 다른 일을 할 의욕까지 상실할 정도"라고 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대에서 술 취한 사람 1명을 처리하기 위해 평균 2∼3시간가량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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