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한옥 살아나자, 마을 심장도 뛴다

조선일보
  • 박세미 기자
    입력 2012.05.30 03:25 | 수정 2012.05.31 09:06

    영천 가상리 '한옥정원' 화제
    건축가 김지호씨 프로젝트… 골조·뒷벽만 남기고 허물어… 마을 공동정원으로 탈바꿈

    건축가 김지호씨.
    이제는 주민이 30여 가구 남짓 남은 마을,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70대를 훌쩍 넘긴 노인들이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곳에 몇달 전 생긴 조그만 '한옥정원'이 화제다. 20년 가까이 빈집으로 방치돼 쓰러져가던 폐가가 한 건축가의 손을 거쳐 쓸모있는 마을 공동체 정원으로 태어난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천시의 '마을미술 행복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된 이 작업은 "고령화·공동화로 고심하던 농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빈집 소생(蘇生) 프로젝트를 이끈 주인공은 젊은 건축가 김지호(28)씨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중국·이스라엘·한국 등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건축설계사무소 'Y디자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한옥정원'은 지난해 말 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강사로 재직하며 맡게 된 프로젝트. 최근 국제전화로 만난 김씨는 "지난달 영천에 다녀왔는데, 한 이웃 할머니가 '구경하러 온 마을 방문객이 많아져 너무나 좋다'고 하더라"며 "고독한 마을에 외로움을 덜어준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20여년간 폐가로 방치돼 있던 한옥(아래)이 생명력을 지닌 정원으로 태어났다. 황토 외벽과 콘크리트 기와는 전부 헐어냈고, 오직 나무 골조와 문살, 뒷벽만을 남겨뒀다. 철골 마루를 새로 만들어 마을 주민에게 쓸모있는 공동체 공간이 된 것도 특징이다. /사진가 고동욱
    한옥정원의 핵심은 '철거'와 '보존' 간 조화를 통해 '새 생명'을 이뤄낸 것. 김씨는 "처음 봤을 때 이 집은 마치 자연(잡초)과 끊임없이 싸우는, 귀신 나오는 집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냥 두면 30년쯤 뒤엔 완전히 자연에 덮여 사라질 것 같았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방적 싸움이 끔찍하면서도 아름답더라고요. 사람은 떠나가고, 주민은 계속 나이가 들고, 자연은 계속 집으로 침투하고… 이런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해답을 찾아보자고 했죠."

    거기에 대한 답으로 나온 게 '한옥정원'이다. 김씨는 "먼지·잡초로 뒤덮인 폐허 같은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생명과 자연을 주제로 한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고 했다. "집에 대한 자연의 일방적 침투를 최대한 균형있게,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사람이 떠나간 외로운 빈집에는 자연이라는 영원히 떠나지 않는 '새 주인'을 선물하고, 그 자연에는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공간'을 선물하려고 한 거죠."

    지어진 지 100여년 남짓 된 집이기에 구조는 위험천만했다. 이음매도 대충 마무리한 경우가 많았고, 잦은 개·보수 때문에 집의 상태도 위태로웠다고 한다. 김씨는 먼저 황토로 된 벽과 콘크리트 기와를 전부 허물고, 나무 골조와 뒷벽만 남겼다. 헐어낸 황토는 앞마당에 깔고, 떼어낸 기와 수백장은 바닥 쪽에 쌓아 디자인적인 효과와 정원 배수 효과를 한꺼번에 거뒀다. 한마디로 남기는 것 없이 '알뜰하게' 건축한 셈. 여기에 추가된 게 방부목과 철골을 가져다 만든 마루다. "주민들이 앉아 쉬면서 참을 먹기도 하고, 손자들이 왔을 때 아이들이 놀게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공사비는 약 800만원 정도 들었다.

    지금 '한옥정원'에는 내부에 3그루의 매화나무, 옆에 8그루의 진달래나무, 철골 마루 사이에 10여그루의 남천나무가 자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스스로 풍성하게 자라는 수종들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멀쩡한 집을 왜 뜯느냐'며 부정적이던 주민들이 공사 막판엔 참까지 가져다주시며 좋아하시더라"며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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