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65]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

조선일보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12.05.29 23:00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다. 소설가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스타인(1874~ 1946)은 미국인이었지만 1903년 파리로 이주해 생(生)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며 피카소·세잔·마티스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그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전위적 화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자유로운 영혼과 진보적인 예술관을 가졌던 그녀의 파리 아파트에는 늘 화가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작가와 비평가들이 북적이며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였다. 그들 사이의 대화에서 20세기를 여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6년, 피카소는 오랫동안 이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스타인은 갈색과 회색 물감만 뒤섞여 있는 작은 팔레트를 손에 쥔 화가 앞에서 아흔 번가량이나 포즈를 취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카소는 "아무리 봐도 더 이상 당신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림에서 얼굴을 통째로 지우고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 - 1906~1907년, 캔버스에 유채, 100×81.3㎝,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스타인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의 얼굴을 완성했다. 단순하고 육중한 얼굴형, 뚜렷한 눈썹, 두꺼운 눈꺼풀은 그가 여행 중에 보았던 고대 스페인, 이베리아 문명의 조각상을 닮았다. 고대 조각의 강인한 얼굴과 견고한 육체가 뿜어내는 장엄한 존재감에서 피카소는 스타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을 발견한 것이다. 스타인은 이후 수많은 소장품을 내다 팔았지만, 이 초상화만큼은 평생을 끼고 살았다.

    누군가가 피카소에게 스타인이 이 초상화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사진 속 스타인의 모습은 피카소의 초상화와 놀랄 만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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