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70대 감독·80대 배우들이 그려낸 러브스토리, 칸을 울리다

입력 2012.05.29 03:12 | 수정 2012.06.04 17:34

[제65회 칸 영화제 폐막]
황금종려상에 '아무르'… 영화 만든 3人의 주역 나이 합쳐보니 237살

'70·80(70대와 80대)'이 만들어낸 러브 스토리 '아무르'가 칸을 울리고 말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미하엘 하네케(70) 감독이 연출하고 장 루이 트랭티냥(82)과 엠마누엘 리바(85)가 주연한 '아무르'(사랑)가 27일(현지시각) 폐막한 제65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아무르'는 사랑과 배려로 살아가던 80대 노부부 조르주와 안의 생애 마지막 부분을 다룬다. 안은 몸이 마비되고, 급기야 언어능력까지 잃어버리는 병에 걸리지만, 조르주는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고통과 죽음을 함께 감당하는 길을 택한다.

‘남과 여’의 그,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녀… 반세기 흘러 다시 칸에 서다 이 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모두 합하면 237년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무르’의 여자 주연 엠마누엘 리바, 감독 미하엘 하네케, 남자 주연 장 루이 트랭티냥(왼쪽부터)이 27일(현지시각) 황금종려상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트랭티냥은 1966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남과 여’의 남자 주인공으로, 리바는 1959년작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 여자 주인공으로 각각 출연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신화 뉴시스
애당초 경쟁부문에서 미국의 신세대 감독과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눈에 띄었지만, 정작 심사위원들과 관객을 움직인 건 70·80대의 역전 노장들이었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과 통찰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평했다.

인간의 위선 파고들던 거장, 사랑의 大家로 변신

미하엘 하네케 감독


“기자들은 언제나 감독들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저 사람은 어느 분야의 대가(大家)나 전문가다’라고 하죠. 오랜 시간 동안, 전 폭력의 ‘전문가’였습니다.”

‘아무르’(사랑)로 제6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하엘 하네케(70)는 시상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위선과 잔혹성을 집요하리만치 파고드는 ‘폭력의 전문가’였던 하네케는 올해 칸에선 ‘사랑의 대가’로 급변신했다. 그는 시상대에서 “‘아무르’는 아내와 내가 영화와 같은 상황을 맞을 경우 약속한 걸 보여준 작품”이라며 “30년간 함께한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우인 부모 아래서 자란 하네케 감독은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 등을 전공한 뒤 방송국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자로 일했다. 1989년 ‘일곱 번째 대륙’을 연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퍼니 게임’(1997) 등을 만들어 명성을 쌓았다.

하네케는 세계 영화제, 그중에서도 유독 칸의 사랑을 받아왔다. 2001년 ‘피아니스트’로 심사위원 대상, 2005년에는 ‘히든’으로 감독상을 각각 받더니 2009년에는 ‘하얀 리본’으로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었다.

1966년작‘남과 여’에서의 트랭티냥(오른쪽). 왼쪽은 여주인공 아누크 에메.
'남과 여' 멜로스타, 46년만의 귀환

男주인공 장 루이 트랭티냥

1966년 제19회 칸 영화제 시상식장.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남과 여’가 발표되자 감독 클로드 를루슈와 함께 남자 주인공 장 루이 트랭티냥이 무대에 올랐다. 그로부터 46년 뒤인 27일 트랭티냥은 82세 노인이 돼 힘겹게 그 무대에 다시 올랐다. 다시 한 번 황금종려상 남우 주연 자격이었다. 한국 영화팬들에게 여전히 유럽 멜로 영화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남과 여’의 주인공 ‘장’이 역전 노장이 돼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트랭티냥은 20세부터 연극을 시작했다. 1955년 로저 바딤 감독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서 브릿지 바르도의 상대역으로 나오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그와 아누크 에메(80)가 공연한 ‘남과 여’는 세계적 흥행을 했고, 피에르 바슐레가 부른 영화 주제가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메의 친구였던 트랭티냥이 를루슈 감독에게 에메를 ‘남과 여’ 상대역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남과 여’ 이후 트랭티냥은 1970~ 80년대 프랑수아 트뤼포(‘신나는 일요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순응자’) 같은 거장의 작품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1959년‘히로시마 내 사랑’에 출연한 엠마누엘 리바.
백발이 된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녀

女주인공 엠마누엘 리바


큰 눈망울과 도톰한 입술에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던 ‘그녀’. ‘아무르’에서 병 때문에 육체와 정신이 모두 스러져가는 주인공 안을 연기한 엠마누엘 리바(85)에게서 50여년 전 ‘그녀’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1959년 칸 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히로시마 내 사랑’(알랭 레네 감독)에서 일본인 건축가( 오카다 에이지)와 애틋한 감정을 나눴던 바로 그 프랑스 여배우. ‘히로시마 내 사랑’은 영화사적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주제와 형식의 혁신을 추구한 영화 경향)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여전히 영화 학도들과 마니아들의 ‘숭배’ 대상이 되고 있는 작품이다.

리바는 파리의 연극 무대에 서기 전까지 재봉사로 일했었다. 그의 데뷔작 ‘히로시마 내 사랑’은 작가 마그리트 뒤라스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으로 원폭 피해지 히로시마에서 벌어지는 서양 여성과 일본 남성의 사랑을 당시로써는 파격적 기법으로 그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리바는 ‘히로시마 내 사랑’이후 홀로코스트를 다룬 질로 폰테코스보 감독의 ‘카포’ 등에 출연했고 2009년엔 장 폴 벨몽도가 연출한 영화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의 출연작품 수는 6편 정도로 배우로서의 활동은 왕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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