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 사회 변화시킬 '장마당 세대'

조선일보
  •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북한학
    입력 2012.05.25 23:11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북한학

    이달 초순 북한 언론 환경을 조사한 미국 연구 단체 인터미디어가 발간한 보고서는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조용한 개방'이라는 보고서 제목이 보여주듯 북한 내에서 외국 방송과 DVD 등의 확산 덕분에 해외생활에 대한 지식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북한에는 개혁과 개방이 없다. 그렇게 개혁과 개방을 치명적인 위험으로 삼는 엘리트 계층의 노력에도 북한은 바뀌고 있다. 북한 청년들은 이 변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에서 미래를 결정할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북한에서 '배급 세대'가 '장마당 세대'로 교체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장마당 세대'는 1980년대 초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생 경험과 가치관은 김일성 시대에 자라난 그들의 부모와 너무나 다르다. 그들의 부모는 국가가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사회에서 자랐다. 30세 이상 북한 주민 대부분은 국가가 시키는 일을 하고 정해진 배급을 받고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겨왔다. 그들은 해외 생활을 잘 모르고 북한을 '지상 낙원'으로 묘사하는 어용 언론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1960년대 숙청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에 보위부나 보안부 같은 보안 기관에 대한 공포가 너무 심해서 정치 노선이나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경제 위기와 기근, 배급제의 몰락 등은 북한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새로운 세상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30세 미만 북한 주민들은 배급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 국가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이다. 그들은 배급을 중심으로 하는 스탈린주의 경제와는 선을 그어놓고 있다.

    '장마당 세대'는 권력기관에 대한 공포가 상대적으로 적다. 1990년대 이후의 북한에서 국가는 예전보다 덜 억압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부정부패의 폭발적인 증가 때문에 법이나 규칙을 위반한 사람도 돈만 있으면 벌을 피하기 어렵지 않게 되었고, 국가 역시 정치범을 이전보다 관대하게 다루는 경향을 보였다. 김일성 시대에서 정치 사건이 나면 주범뿐 아니라 가족 전체까지 수용소로 들어갔지만 요즘에는 가족이 중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부정부패 때문이든 국가가 관대하기 때문이든 결국 북한 청년들은 보위부나 노동당을 덜 무서워한다.

    '장마당 세대'는 해외 생활에 대해서 잘 안다. 세뇌 교육이나 공포 때문에 외국 방송 청취나 외국 영화 관람을 피했던 '배급 세대'와 달리 지금의 북한 청년들은 남한과 해외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 또 그들은 중국을 방문하는 북한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을 뿐 아니라 친구와 가족들에게 이를 전해준다. 그들은 중국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알고 남한이 잘사는 나라임을 짐작한다.

    이런 세대교체는 1970~80년대 구소련의 세대교체와 너무나 유사하다. 소련에서도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자란 사람들은 권력기관을 덜 무서워하고 해외 생활을 더 잘 알게 됐으며,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의심도 갈수록 심각해졌다. 그 사람들이 1980년대에 소련 사회의 엘리트가 되자 정치와 사회 제도가 바뀌었다. 북한에서도 '장마당 세대'가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바꾸고 경제성장과 정치적 자유화를 가져올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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