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6·25 참전 16개국, 피와 땀을 알리겠다"

    입력 : 2012.05.21 03:05

    10여년간 모아온 6·25 사진, 책으로 낸 안재철씨
    흥남 철수 때 모인 주민 등 희귀사진 1200여점 한 곳에

    /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2001년 10월 14일 뉴저지의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열린 어느 수사(修士)의 장례식에 우연히 참석하기 전까지 안재철(56)씨는 미국 교민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착실하게 가정을 꾸리던 평범한 비즈니스맨이었다. 운명의 전환점이 된 장례식장에서 안씨는 고인인 마리너스 수사가 6·25전쟁 흥남 철수 당시 미국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21~23일 흥남 부두에서 북한 피란민 1만4000여명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갔다.

    "마리너스 수사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역사를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현대사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지요."

    처음엔 공부 차원에서 6·25전쟁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흥남 철수에 유독 관심이 갔다. "미군 입장에서 보면 당시 피란민은 공산국가 주민이잖습니까? 적국 국민인데도 이 피란민들을 구하려다 미군들이 희생됐어요. 전쟁은 참혹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는 아예 본업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당시 16개국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그들의 노고와 희생을 알리는 것이 그분들에 대한 감사 표시이자 우리 역사 바로 알리기라고 생각했어요."

    미국 국무부와 국립자료보관청에 가서 사진들을 뒤져보고, 부족한 부분은 미 공군·해군·해병대에 따로 요청을 해가며 하나씩 수집했다. 10여년간 그렇게 모은 사진이 2만여장. 미군에 치우치지 않고 16개 참전국 사진을 모두 공평하게 모았다.

    최근 그는 이 사진집을 3권짜리 한 세트(각 400여 페이지씩 총 1240페이지, 판매가 48만원)로 만들어 우선 500부를 찍었다.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전투마다 지도를 넣고, 사진엔 일일이 영어 주석을 달아 외국인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지난 3월 핵안보정상회담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기념 증정하기도 했다.

    안씨는 허허벌판에 까만 점이 가득 찍힌 듯 보이는 사진을 가리키며 "제일 기억에 남는 사진"이라 했다. 1950년 12월 8일 장진호 인근 개마고원 일대에 주둔 중인 미 해병1사단 임시 캠프 앞에 북한 주민 수천여명이 모인 모습을 공중 촬영한 것이다. "개마고원 일대엔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인근 주민 전부일 거예요. 공산주의를 5년간 겪었던 이들이 'UN군을 쫓아가면 자유세계로 간다'며 전부 모인 겁니다. 자유에 대한 열망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이죠."

    가족을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밀가루 배급을 받아 나오는 젊은 아낙, 전쟁 통에 고아가 된 아이들의 일그러진 표정 등 소시민들 모습을 찍은 사진을 많이 모았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2005년엔 국내 곳곳을 돌며 6·25 사진전도 열었다. 2008년 6월 8일부터 지금까지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전을 열고 있다. 외국인들 반응은 좋았다. 한 참전용사의 아내는 그를 찾아와 "고맙다"고 했고, 어느 미국인은 "한국은 역사에 무관심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고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월드종합라이센스(대표 박경현)의 후원을 받아 자금 문제는 다소 숨통이 틔었지만 다른 복병이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시민들은 시청 앞에 전시된 사진들을 마구 불태웠다. 어느 젊은 엄마가 맥아더 장군 사진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저놈 때문에 우리가 통일을 못 했어"라고 욕한 일도 있었다.

    "전 정치적 의도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난날을 알리기 위해 이 일을 합니다. 많은 젊은 세대가 편향된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기성세대가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예요. 그래서 더더욱 6·25 사진전과 책 편찬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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