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윤덕의 사람人] 서울 토박이, 非외무고시 출신으로 유엔 입성… 강경화 OHCHR 부대표

  • 김윤덕

    입력 : 2012.05.19 03:09 | 수정 : 2012.05.20 13:49

    北에 '통영의 딸' 답장 받아낸 유엔 인권기구… 이 한국 여인이 진두지휘
    DJ의 통역사, 코피 아난도 인정한 추진력

    지난 1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만난 강경화 부대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그는 “나도 실패한 적 많다. 성공의 한길로 달린 욕심 많은 사람으로 오해하지 말아달라”며 밝게 웃었다. /김영근 기자
    '원조 나승연'이란 말에 '나승연이 누구냐?'고 되물어 웃음이 터졌다. 강경화(57)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는 1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날아왔다. 오전 세션을 마친 뒤 잠시 시간을 낸 그녀는 "인터뷰실 같은 데 말고 그냥 (로비)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얘기하자"며 활짝 웃었다.

    강경화는 한국 여성으로는 유엔에서 가장 높은 직책에 있다. 사무총장이 임명하는 직급 중 둘째로 높은 ASG(사무차장보)다. 유엔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그는 최고의 본보기이다. 비(非)외무고시 출신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IMF 외환 위기 직후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외교부 국제 전문가로 특채,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통화 통역을 훌륭하게 해내면서 '출세 가도'에 올랐다. 외교부 장관 특보, 국제기구심의관을 거쳐 외교부 국제기구국장에 올라 다자 외교의 여성 파워를 보여준 그는 2007년 1월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로 임명됐다.

    첫 직업이 KBS 영어 방송 아나운서였다는 것 때문에 강경화는 종종 '영어와 미모를 무기로 운 좋게 성공한 여성'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 위원장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탄생의 숨은 공신으로, 유엔 최고 인권 기구인 OHCHR을 6년째 이끌며 보여준 생명력은 강경화의 리더십을 재평가하게 했다.

    기자와 마주 앉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중동 문제로 가득 찬 듯했다. 이날도 시리아 정부군이 난민 캠프를 공격한 일이 발생했다.

    DJ의 명통역사

    ―언제부턴가 매스컴에 반백의 헤어스타일로 등장해 놀라는 사람이 많다.

    "친정엄마도 놀란다. 당신이 민망해 죽을 노릇이니 제발 염색 좀 하라신다.(웃음) 2008년인가, 새해 결의 중 하나로 정한 게 염색 안 하기였다.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일하고 있는 제네바는 워낙 다양한 인종에 머리 색깔이 천차만별이라 내 반백 머리에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웃음)"

    ―나승연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멋지게 해내 스타가 된 여성이다. 영어 실력과 미모라는 공통점 때문에 '원조 나승연'으로 표현해봤다.

    "아, 그분 기억난다. 하지만 난 대학까지 서울에서 나온 토박이다.(웃음) 출세하려고 영어에 매달린 건 아니고 프랑스어, 독일어 등 그냥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강찬선 전 KBS 아나운서)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영어를 잘해야 유엔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나도 유엔 발령받고 들어갈 때는 영어 구사력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직원들 영어를 내가 고쳐줘야 했다. 문법 위주의 한국식 영어 교육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더라.(웃음) 유엔에서는 논리적인 사고와 글쓰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특히 우리 OHCHR은 글 잘 쓰는 인재들이 절실하다. 제네바에서 나오는 공식 문서 중 60%가 우리 기구에서 나온다. 어떤 보고서는 국가 간 매우 민감한 사안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통역사로 3년간 의전을 수행한 것이 크게 도움됐을 것 같다.

    "물론이다. 김 대통령께서 영어로 연설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그때 (영어) 연설문을 많이 썼다. (매사추세츠 주립대) 대학원에서 학위 밟을 때 지도교수님이 글쓰기를 아주 까다롭게 가르치셔서 그때 고생하며 연습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역대 대통령 통역사 중 강경화는 명통역으로 꼽힌다.

    "당시 국가적 과업이 경제 위기 극복과 대북 포용 정책이었다. 수많은 정부 수반과 기업 CEO가 대통령을 만나러 오니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행사 직전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다행히 김 대통령께서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말씀하는 분이라 오히려 통역이 쉬웠던 것 같다. 대통령께선 늘 조그만 메모지 한 장을 손에 쥐고 계셨다. 그 안에 당신이 하실 말씀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그거 한 장 가지고 세계의 리더들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외교부 국제 전문가로 특채돼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 통 역사로 활약하던 시절의 강경화. /조선일보DB
    반기문 총장과 UN 동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2007년 나란히 유엔에 입성한 '동기'다.

    "반 총장님은 2007년 1월 1일에 뉴욕 본부에서, 나는 1월 15일에 제네바 OHCHR에서 일을 시작했다.(웃음) 반 총장님 선거 일을 돕는 중에 OHCHR 부대표직 공개 모집 소식을 들었다. 유엔 친구들이 꼭 지원해보라고 해서 용기를 얻었다."

    ―외교부에서 국제기구 국장을 맡을 때였다. 굳이 유엔으로 간 이유는 뭘까.

    "인권에 관한 분야라 도전해보고 싶었다. 헌신하며 봉사할 수 있는 자리라 원서를 냈고, 별자리가 잘 섰는지 일이 잘 풀렸다.(웃음)"

    ―인권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됐나.

    "출발은 여성 인권이었다. 국회의장실에서 국제담당비서관으로 일하던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다. 정부, NGO가 함께 꾸린 대표단의 대변인으로, 우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등 2주 동안 정말 신나게 일했다. 그때 처음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공동 의제(議題)를 세우고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일을 유엔이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이 강경화의 추진력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 있다.

    "2004년 유엔여성지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할 때 눈여겨보신 것 같다. 베이징 대회 10주년이던 2005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를 당시 위원장이던 내가 주재했다. 유엔 장애인협약에 여성 장애인 관련 내용을 별도 조항으로 만들어 넣는 것을 3년에 걸쳐 추진해 성사시킨 것도 좋게 보신 것 같더라."

    ―OHCHR은 지난 3월 중국 정부의 탈북자 송환 조치가 국제사회 이슈로 떠올랐을 때 그 중심에 있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선영 의원 등 우리 국회단이 제네바로 날아가 국제사회 협력을 촉구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귀환시켜선 안 된다'는 공식 성명을 냈고, 우리(OHCHR)도 중국 대표부를 만나 '비귀환'을 간곡히 요청했다. 한편으로 북한과 계속 접촉하면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북한 자체가 인권이사회의 결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진전은 없다. 질의 서한을 보내도 전혀 반응이 없다. 다만 탈북자 송환 조치 문제로 북한의 인권 문제가 전 세계에 부각된 것은 확실하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통영의 딸' 신숙자씨 가족과 관련해서는 얼마 전 OHCHR에 일곱 줄짜리 답변을 보냈다.

    "'신숙자씨는 간염으로 사망했고, 두 딸은 오길남씨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공식 답변에 신뢰성이 있는지를 두고 현재 우리 기구 산하 '임의적 강제 구금에 대한 실무 그룹'이 평가 중이다. 6월 중 그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고 유엔의 후속 조치가 나올 것으로 안다."

    신숙자, 그리고 시리아

    ―요즘은 중동 문제로 바쁜 모양이다.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의 시민단체들로부터 SOS(긴급구조요청)가 수없이 들어온다. 북아프리카 인권 상황도 매일 체크해야 한다.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시리아 상황을 직접 살펴봐야 해서 입국을 시도하고 있는데 정부로부터 거절당하고 있다."

    ―현장에 자주 나가나?

    "우리 기구에 소속된 인권 공무원 1700명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가 현장 관찰이다. 유엔이 결의해 규범으로 정한 것이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세계 도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권에 대한 갈망과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뛴다. 문제는 유엔이 과격분자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바그다드 유엔본부에서 OHCHR 대표가 습격당한 이후 유엔 활동가들의 안전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우리 국가인권위원회에 쓴소리를 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고 본다. 지난해 고려대 의대생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서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대학 당국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다. 법 규정은 다 있는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 사고방식은 성희롱, 사소한 성추행 정도는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작은 문제부터 엄격히 해결돼야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중국 동포 오원춘의 20대 여성 살인 사건으로 사형제를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극악한 범죄자라도 범죄자이기 전에 인간이고 최소한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게 인권 헌장의 취지다. 사람 목숨을 다른 사람이 앗아간다는 게 옳지 않고, 사람의 판단이라는 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형제를 없애자는 게 유엔의 입장이다."

    ―6년째 OHCHR의 부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3년이 기본 임기였고 1년씩 연장 임명돼 왔다. 보람이 크다. 인권은 국가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한 국가의 정체성을 꿰뚫는 데 가장 효과적인 프리즘이다."

    남수단에서 만난 여성

    ―반기문 총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다. 고위직 공무원은 대개 명예가 훼손될 위험이 있는 일은 하지 않는데, 반 총장님은 이건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밀고 나가신다. 유엔여성(UN WOMEN)이라는 여성 담당 총괄 기구를 만든 것, 소리 없이 유엔 개혁을 이끌고 있는 점이 그렇다. 서양식 지도자에게 익숙했던 직원들이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움직이는 반 총장의 동양적 리더십에 처음엔 당혹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워낙 부지런하시고.(웃음)"

    ―국제기구의 한국인 진출이 활발하다. 2002년 219명에서 2011년 398명으로 갑절가량 늘었더라.

    "국제무대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열망이 뜨겁다는 걸 체감한다. 지난해 남수단에 갔다가 한국인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유엔V'라는 자원봉사자 그룹 일원으로 그 오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 남들이 모르는 길을 뚫어 국제사회에 헌신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유엔의 본질은 뉴욕과 제네바가 아니라 현장'이란 말을 평소 강조해왔다.

    "유엔의 실체는 그라운드에 있다. 뉴욕이나 제네바에서 화려한 말잔치를 벌이는 것이 유엔이라고 믿고 있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거다. 유엔에 입성하는 것도 현장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훨씬 빠르다. 2년 이상의 현장 경험이 박사 학위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유엔 문화'라는 게 있다더라.

    "나도 답답할 때가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이라 오히려 소통이 안 되고 신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함께 일하기 힘든 직원도 있어서 오래 설득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히려 내부 직원을 끌고 가는 게 내겐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웃음)"

    ―승승장구 비결이 뭘까.

    "승승장구 아니다. 박사 학위 받고 돌아왔는데 어느 대학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5년간 보따리 강사 했다. 3남매 양육 때문에 직장 그만두고 1년간 전업주부로도 살아봤는데, 나도 아이들도 별로 행복해지지 않길래 다시 일을 시작했다.(웃음) 운도 따랐다. 내 사회생활 초창기는 여성들에게 기회가 막 열리는 시기였다. 누구는 내가 욕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비고시 출신이라 외교부 내에서 소외당한 적은 없는지.

    "진골이 아닌 데서 오는 소외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다만 평가라는 건 언제든 업무 수행 능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잘한다' 소리 들었다."

    ―절망하는 20대에게 한 말씀 해달라.

    "주제넘은 말이지만, 좀 더 길게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100세 시대 아닌가. 조급해하지 말고 기량을 갈고 닦으며 기다려라. 어떤 실패도, 어떤 세월도 그냥 날아가지 않는다. 거름이 된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우리 정치권에 여성 리더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다만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섰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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