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짓눌린 우울, 몽환적 화면… 지구 종말이 우아하다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2.05.17 03:14

    라스 폰 트리에 감독 - 멜랑콜리아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마주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그의 영화를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과도한 이미지와 개연성 없는 내러티브, 자기연민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짓눌린 듯 답답해진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우울)에서 느껴지는 이 '가슴이 짓눌린 듯한 답답함'은 꽤나 즐길 만하다.

    이 영화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커스틴 던스트는 우울증에 걸린 카피라이터 저스틴 역을 맡았다. 영화 1부에서 저스틴은 자신의 결혼 피로연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파혼을 하고 만다. 영화 2부에서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저스틴은 언니 클레어(샤를로뜨 갱스부르)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멜랑콜리아'와 지구의 충돌을 앞두고 이성적인 클레어는 극도의 불안감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렸던 저스틴은 오히려 평온한 모습을 보인다.

    팝 엔터테인먼트㈜ 제공

    존 에버렛 밀레의 '오필리아'와 피터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 카라바지오의 '골리앗 머리를 든 다비드' 등 영화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들처럼 영화의 화면은 현실적이기보단 회화적이다. '멜랑콜리아'와의 충돌로 종말을 앞둔 지구는 몽환적이고 우아해서 은근히 종말이 기다려질 정도다. 이미지가 넘쳐나기는 하지만 과용하진 않았다. 처절한 아비규환보다는 완벽히 아름다운 정적 속에서 불안과 우울에 스러져가는 클레어와 저스틴을 볼 때 관객들은 더 가슴을 졸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편이 더 참담하다.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 출신의 마르실리오 피치노(Ficino)와 같은 신플라톤주의자는 "우울이 없이는 창조적 상상력도 기대할 수 없으며, 모든 창조는 이것으로부터 연유한다"라고 했다. 폰 트리에 감독은 전작 '안티 크라이스트'(2009)를 만들기 전부터 줄곧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모든 창조가 우울로부터 나왔다는 건 과장일지 모르지만, 폰 트리에 감독에게 있어서 우울은 '그의 힘'인 듯하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달처럼 떠있는 행성 '멜랑콜리아'가 내는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신(裸身)으로 월광욕을 하는 저스틴.
    >#대사 "지속될 때 즐겨라"(저스틴의 결혼 피로연에서 어머니가 하는 축하인사. 그 결혼은 하루도 못 지나 파국을 맞는다.)

    #해외평 '강렬한 미적 아름다움을 가진 영화'(롤링 스톤)

    #이런 분 보세요 '2012'나 '투모로우'와 같은 시끌벅적한 재난 영화가 싫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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