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마트 철거않고 재활용… 병원, 뻥 뚫리다

    입력 : 2012.05.16 03:22

    [임영환·김선현 부부건축가 작품]
    수원 쉬즈메디 병원 증축때 옆 건물 '재생'통해 리모델링
    1층입구~3층 15m 확 트여… 건물 안 부수는 게 '친환경'

    부부 건축가 임영환(오른쪽)·김선현씨.
    "병원을 좀 확장하려 합니다. 지금 병원 옆에 허름한 창고형 매장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데 부수고 번듯하게 새 병동을 지으려고요…."

    재작년 겨울, 부부 건축가 임영환(43·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김선현(40·디림건축 대표)씨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전화 한 통이 왔다. 증축을 고민하던 수원의 한 산부인과 병원장이 신문에 실린 이들의 기사를 보고 연락한 거였다. 두 건축가는 그해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서울시 건축상',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신축을 바랐던 건축주에게 건축가가 내린 '처방'은 리모델링. 예상 밖이었다. 건축주가 리모델링을 원하더라도, 작품성과 설계비를 따지면 신축으로 방향을 선회시키고 싶은 게 건축가의 일반적 속내이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가전 매장(하이마트)으로 쓰이던 3층(연면적 1983㎡·약 600평)짜리 창고형 건물의 운명은 '철거'에서 '환생'으로 바뀌었다. 지난 2월 증축이 끝난 경기도 수원 인계동의 '쉬즈메디'다.

    14일 이 병원에서 만난 두 건축가는 "태양광판을 붙인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건물'을 짓기 이전에, 기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철거하는 반(反)환경적인 건축 풍토부터 바꾸자는 심정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다"고 했다. "건물 겉은 낡았지만 구조 진단을 해보니 멀쩡했어요. 무조건 부수고 짓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비용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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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을 리모델링한 신관(왼쪽)과 기존 본관(오른쪽)은 40m 길이의 브릿지로 연결됐다.
    '산부인과 병원'이라는 특성도 이들에겐 매력적인 도전 과제였다. "새 생명이 세상과 처음 만나는 공간인 데다 저출산으로 인해 문 닫는 산부인과 병원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재생' 프로젝트"라는 점 때문이었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지망하는 의대생이 거의 없는데, 후배들에게 산부인과 전문의도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건축주 이기호(59) 쉬즈메디 원장의 '건전한' 희망도 이들을 이끌었다.

    곧 철거해야 할 저가 쇼핑몰 건물이라는 인식을 걷어내자 매장 건물이기에 병원으로 치환하는 데 유리한 조건들이 눈에 띄었다. 우선 높은 천장고. 일반 오피스 빌딩의 경우 4m 안팎인 천장 높이가 이 건물에선 4.5m였다. 병원의 복잡한 설비 시스템을 넣을 수 있는 층고였다. 다음은 넓은 스팬(기둥과 기둥 간의 거리). 기둥 간격이 10m로 넓고 한 층이 탁 트여 진료실 배치가 수월했다. "대부분의 병원이 공간이 협소해 진료실을 수직적으로 배치하는데, 매장의 특성인 넓은 공간 덕에 2층 한 층에 10개의 진료실을 배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1층 입구부터 3층까지 15m 높이로 뻥 뚫려 개방감을 주는 계단홀(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있는 공간)도 창고형 매장이었기에 가능했던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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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초 허물어질 운명이었던 창고형 가전 매장을 산부인과로 개조한 수원 쉬즈메디병원 신관. 4.5m의 높은 천장고와 10m의 넓은 기둥 간격을 활용해 일반 병원에선 보기 힘든 탁 트인 진료 대기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임산부를 위한 콘서트장으로도 활용된다. 아래 사진은 리모델링 전 모습. /사진가 박영채

    왼쪽에 있는 기존 5층짜리 병동은 길이 40m의 긴 브릿지로 연결했다. 이 브릿지에는 수술실이 있는 신관 3층과 신생아실이 있는 구관 3층을 편리하게 연결해주는 일차적 역할 말고도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다. "산모들이 쉬엄쉬엄 거닐면서 회복 운동을 할 수 있게 산책로처럼 만든 거죠." 다리 이름은 '치유하는 다리(Healing Bridge)'. 브릿지 기둥에는 빨간 글씨로 운동 칼로리표가 앙증맞게 적혀 있다. '한 바퀴 돌면(1st turn) 4.2㎉, 두 바퀴 돌면(2nd turn) 8.4㎉….'

    "화려한 청자 같은 건물보다는 담백한 백자 같은 건물"을 지향했기에 외장과 내장재는 최대한 차분하게 했다. 앞쪽 외피엔 베이지색 라임스톤(석회암)과 회색 징크(아연)를 썼다. 건물의 뒷부분 절반은 이전 매장 건물의 은색 저가 폴리페놀 외장재를 그대로 남겨놨다. 향후 증축 때 철거될 가능성이 커 비용 절감 측면에서 남겨둔 거란다.

    철거 직전의 건물에 새 생명을 준 두 건축가는 한 에피소드로 소감을 대신했다. "외국 건축가가 서울에 왔다가 한 아파트 단지에 '경축 안전진단 통과'라고 현수막이 걸린 걸 봤답니다. 구조가 불안해서 재건축하게 된 거라고 설명해줬더니 '안전진단 통과'라는 표현을 쓴 것도, 다시 짓게 되는 걸 축하하는 분위기도 이상해하더랍니다. 건물을 부수고 짓는 데 익숙한 부끄러운 우리 현실이죠." 이들은 안전과 불안전의 개념조차 전도(顚倒)된 우리의 건축 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재활용 건축'을 지속해나갈 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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