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눈물로 쌓은 집, 평화를 노래하다

조선일보
  • 박세미 기자
    입력 2012.05.04 03:08

    벽돌에 새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지막 한마디
    위안부 역사 담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내일 개관
    시민들 기부금 20억으로 오래된 주택 개조해 건립

    박물관 설계자인 '와이즈건축' 장영철(오른쪽)·전숙희 소장.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거친 회색 벽돌 표면에 한(恨)으로 새긴 글귀가 가득하다. 이 벽돌들이 모여 6m의 벽을 이뤘다.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라는 명목으로 전쟁터에 끌려가야 했던 '소녀들'이 할머니가 돼 세상을 뜨기 전 남긴 유언(遺言)들이다. 글씨는 지하 1층에서 지상 1·2층으로 이어진 좁은 계단 벽을 따라 띄엄띄엄 이어진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과 질곡(桎梏)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다. 5일 어린이날,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자락의 한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개관식을 갖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다. 건립을 추진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평화의 세상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는 의미에서 어린이날을 개관일로 정했다"고 밝혔다.

    설계는 현상 공모를 통해 '와이즈건축'의 장영철(42)·전숙희(37)씨가 맡았다. 지난해 문화부로부터 '젊은건축가상'을 받은 건축가들이다. 박물관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차분하고 낮은 시선에서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기억·추모·기록·치유' 순으로 이어지는, '서술적(narrative) 박물관'이다. 방과 방,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 관람객에게 할머니들의 역사를 경험하게 한다. 전숙희씨는 "주제의 무거움을 의식해 화려함과 웅장함은 최대한 배제했다"며 "작지만 경박하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고 했다. 외벽은 주변 주택들과 조화를 이루고 차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옷감을 짜듯 전(塼)벽돌(연필심 색깔의 벽돌)로 성글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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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om
    박물관의 핵심은 치유의 과정을 그린 색다른 동선(動線)이다. 일반 건물처럼 출입문→1층→2층으로 동선이 순차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출입문→지하1층→2층→1층→마당의 순으로 연결된다. 박물관 건물 서쪽에 작고 낮게 만든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수백 개의 자갈이 깔린 어둡고 좁은 복도를 먼저 만나게 된다. 장영철씨는 "자갈을 밟을 때 나는 '사각사각' 처량한 소리를 통해 할머니들이 속절없이 걸어가야 했던 고통의 길을 청각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했다. 자갈길을 지나면 지하 1층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으로 들어가 영상물을 보게 된다. 이 방을 나오면 유언이 적힌 계단 벽을 따라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게 돼 있다. 2층은 '수요 위안부 집회' 자료 등 지난 22년간 정대협이 수집해온 위안부 관련 역사기록물들로 채워진다. 2층 전시를 보고 난 이들은 1층 전시실을 향해 내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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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시민들 이름 빼곡히 '기부자 벽' - 박물관 2층 한가운데 설치된 '기부자벽'. 박물관 건립에 힘을 보태준 기부자 8000여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아래 사진)벽에 박힌 그녀들의 유언 - 박물관의 좁은 계단 옆 벽돌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전에 남긴 유언이 새겨져 있다. 글씨는 정대협 관계자들이 손으로 썼다. 천창(天窓)을 내 햇빛이 자연스럽게 유언을 비추게 만들었고, 박물관으로 개조하기 전 주택의 벽 위에 생긴 깊은 상처도 그대로 두어 자연스럽고 질박한 느낌을 살렸다. /사진가 김두호
    박물관은 시민의 힘으로 건립됐다. 시민의 자발적 기부로 총비용 20억원을 충당했다. 기부금 17억원으로 개인 소유였던 주택(대지 350㎡·연면적 308㎡)을 사들였고, 지난 1년여간 진행된 '1만원 기부 릴레이' 캠페인을 통해 모은 3억여원을 건물 개조 공사비에 썼다. 8000여명의 기부자 이름은 박물관 2층 한가운데 세워진 '기부자 벽'에 일일이 새겼다. 전시를 다 보고 난 관람객은 연진달래, 감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이 가득한 마당의 '야생화뜰'로 나온다. 건축가는 할머니들께 "위안부로 끌려가며 길바닥에서 무엇을 보셨느냐"고 물었단다. "'동구 밖에서 늘 보던 그 꽃'이라고 하시더군요. 전혀 상처받지 않고 가장 순수한…. 그 시절, 그 공간으로 할머니들을 돌려 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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