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쥐덫' 환갑

입력 2012.05.03 03:09

[런던 세인트마틴 극장을 가다]
극장 초입에 큼지막하게 60년, 2만4763회 적혀
할인? 그런 거 없어요… 이 연극은 영국의 자존심

역사는 왕비의 한마디로 시작됐다. 1947년 팔순을 앞둔 영국 국왕 조지 5세의 부인 메리 왕비에게 BBC 라디오가 물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오페라든 셰익스피어든 말씀만 하세요." 헌정 방송을 위한 질문에 대한 왕비의 선택은 의외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연극이 좋겠어요." 곧바로 집필에 들어간 추리소설의 여왕 크리스티(1890~1976)는 단편 '세 마리 눈먼 생쥐(Three Blind Mice)'를 내놓았다. 후에 '쥐덫(The Mousetrap)'으로 개작된 전설적 작품의 탄생이었다.

세계 최장 공연 횟수를 늘려가고 있는 연극‘쥐덫’의 공연장인 런던 세인트마틴 극장. 지난 29일로 2만4763회를 맞았다. /런던=신정선 기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연극 '쥐덫'이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연극과 뮤지컬·오페라뿐 아니라 모든 공연을 통틀어 최장 기록이다. 1952년 10월 6일 노팅엄 로열극장에서 첫 공연을 한 후, 같은 해 11월 25일 런던 앰배서더 극장에서 웨스트엔드 초연을 올렸다. 그 후 영국 총리 12명이 바뀌었으나, '쥐덫'은 그대로다. 장소만 바로 옆 세인트마틴 극장으로(1974년 3월 25일) 옮겼을 뿐 온갖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거쳐 간 배우 403명, 연출가 24명, 11년간 동일한 배역(4575회)을 맡아 기네스북에 오른 배우, 15년 최장 대역(代役·understudy) 기록을 세운 배우, 60년째 벽난로 선반에 소품으로 놓인 빨간 시계, 현재까지 판매된 아이스크림 426t…. '웨스트엔드의 상징'이자 세계 연극계의 자존심과 동일시되는 작품이다. 30년도 안 된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은 아들뻘이다.

지난 29일 레스터 광장 인근 세인트마틴 극장을 찾았다. 극장 전면에는 '쥐덫 60주년'이라는 붉은 글씨가 덮여 있다. 입구 오른편에 어른 키 높이의 알림판에 총 횟수를 알리는 '24763'이라는 숫자가 뚜렷하다. 왼편 매표소에는 큼직한 글씨로 '모든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붙어 있었다. 창구 직원에게 "왜 할인이 한 종류도 없느냐?"고 물었더니 "60년 공연으로 작품성이 이미 검증됐는데, 할인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표 값이 싸지도 않다. 프리미엄석이 60.6파운드(약 11만원), 제일 싼 좌석은 16.6파운드(약 3만원)다. 그럼에도 이날 550석 극장의 일부 시야장애석을 제외하고는 자리가 거의 찼다.

'쥐덫'이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 첫 해외공연을 하던 장면. /Corbis·토픽이미지

연극은 "살인이다!"라는 비명이 어둠을 가르며 시작한다. 폭설로 고립된 외딴 여인숙에 5명의 손님이 차례로 도착하면서 세 마리 생쥐 노래에 얽힌 어두운 과거가 밝혀진다. 공연 후 커튼콜 때는 범인 역을 맡은 배우가 나와서 꼭 하는 인사가 있다. "관객 여러분은 이제 '쥐덫'의 파트너가 되셨습니다. 연극의 결말은 마음속에만 간직하시고, 절대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쥐덫은 현재 공연계의 흐름과 크게 상반된다. 스타 배우도 없고, 홍보에 공을 들이지도 않는다. 유머와 스릴이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정제된 연출의 힘으로 이어진다. 극장 곳곳에 걸린 윈스턴 처칠 총리(1957년), 엘리자베스 2세 현 여왕(2002년) 등의 관람 사진은 이 작품에 대한 영국 사회의 애정과 관심을 보여준다. 1992년 40주년 파티에 참석한 존 메이저 당시 총리의 말은 '쥐덫'의 위상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지, 영국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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