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은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 대해 잘 모르고, 아들은 아버지를 속이려고만 든다. 대만 출신 리안(李安) 감독 영화 '결혼 피로연'의 인물들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 사는 대만인 웨이퉁(자오원쉬안·趙文瑄)은 사이먼과 5년째 사랑하는 사이다. 둘의 성별이 모두 남성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미국 사회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만에 있는 부모님만 생각하면 웨이퉁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들의 연인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 평범한 동양인 부모가 큰 충격을 받을 테니 말이다. 부모는 아들이 어서 결혼하여 손자를 안겨주기만 고대하고 있다.

이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자식 세대는 편법을 고안해낸다. 미국 비자가 필요한 대만 여성 웨이웨이(메이 친)와 짜고서 위장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다. 부모는 결혼식을 위해 아들 집을 방문하고 아들, 아들의 연인, 아들의 가짜 아내가 한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웨이웨이가 실수로 웨이퉁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상황은 더 꼬여만 간다.

'결혼 피로연' - 원제 '喜宴(희연)', 리안 감독, 자오원쉬안·메이 친·랑 슝 주연, 106분, 대만·미국, 1993년.

이 선량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비극이다. 어쩌면 가장 당혹스러운 건 평생 보수적으로 꼬장꼬장하게 살아온 웨이퉁의 아버지(랑슝·郞雄)일 것이다. 그는 자기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슬슬 눈치채지만 현실은 속수무책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는 건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이 어머니한테는 울먹이면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지만 아버지한테는 고백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터다.

아들의 진실을 알게 된 늙은 아버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아들의 착한 연인을 위해 돈이 담긴 빨간 봉투를 건넨다. "생일 축하하네." "알고 계셨군요." "영어를 못해도 보고 듣는 건 배웠지. … 자네도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야." 이보다 더 가슴 아리게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한 장면은 드물 것이다. 마지막 장면, 공항 출국장을 향해 뒤돌아 걸어가던 아버지가 문득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린다. 잘 있으라고 하는 것도 같고, 이제 그만 항복을 선언하는 것도 같다. 그 초라한 뒷모습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