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열렸던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 '본 디스 웨이 볼'이 선정성 등을 이유로 18세 미만 관람가 판정을 받으면서 이 결정을 내린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박선이)는 레이디 가가 만큼이나 유명세를 타게 됐다. 앞서 김경묵 감독의 영화 '줄탁동시'와 노르웨이 출신 야니케 시스타드 야곱슨 감독의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가 사실상 극장 상영이 불가능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자 8일 영화인들이 항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선 등급 결정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내리고 있는 걸까.
◇요통, 두통에 시달리는 심의위원들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영등위에 찾아가 영화 등급 판정 과정을 지켜봤다. 오후 1시가 되자 약 66㎡(약 20평) 크기의 영화등급 소위원회실에 7명의 심의위원이 모였다. 한 위원은 심의 시작 전 커피를 컵에 가득 따르면서 "2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 두 편의 영화를 봤다는데 요즘 우리는 하루에 서너 편씩 봐야 하고 주말에도 나와 두 편을 보고 있다"고 했다. 영화등급 소위 조금환 의장은 "최근 들어 케이블 채널이 늘어나고 IPTV까지 생기면서 심의해야 할 영화가 늘어나 평균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영화들까지 봐야 하는 게 고역이다. 요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위원들까지 있다"고 했다. 한 여성 위원은 "책임감을 갖고 보기 때문에 영화 감상과는 다르다"면서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에로영화를 하루에 두 편씩 봐야 하는데 여러 위원이 같이 보는 데다 '일'이다 보니 민망한 생각도 들지 않게 되더라"고 했다. 위원들은 하루에 1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여성 5명, 남성 4명 등 모두 9명인 심의소위 위원들은 공모를 통해 뽑으며 직업과 나이, 성별 등을 고려한다. 현 위원들은 영화감독, 전(前) 언론인, 동화책 작가, 시나리오 작가, 공연기획자, 교수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영등위 류종섭 부장은 "위원 임기는 1년이고 최대 3년까지 연임할 수 있지만, 연임하는 사람은 드물고 심지어 '영화 보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1년을 못 채우는 사람까지 있다"고 했다.
◇구체적 성행위는 청소년 관람불가
이날 첫 번째 심의 대상은 전직 마약상이 아프리카의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내용의 미국 영화. 위원들은 상영이 끝나자마자 각자 책상에 놓인 컴퓨터를 통해 등급 판정을 매겼다. 주제·선정성·폭력성·공포·약물·대사·모방 위험 등 7개 분야로 세분화해 분야별로 '전체관람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청불) '제한상영가' 등을 매기고, 영화의 줄거리와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서술형으로 썼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영화의 관람 등급을 결정하고, 그렇게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 200~300자 정도 썼다.
이 영화에 대해 위원 5명은 '15세 이상 관람가', 2명은 '청불' 판정을 내렸다. 이런 경우 별도 논의 없이 다수결에 따라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이 매겨진다고 한다. '청불' 판정을 내린 한 남성 위원은 '불에 타 뒹구는 시신들, 지뢰가 터져 하반신이 날아간 아이 시신' 같은 장면들을 근거로 썼다. 조금환 의장(영화감독)은 "8명이 참석하면 4대 4로 의견이 갈릴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경우에는 위원들끼리 토론을 한 뒤에 다시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의견을 바꾸는 위원이 없는 경우에는 의장 권한으로 등급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고 했다.
'선정성'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단 기준의 경우 '신체노출, 성적접촉, 성행위 등이 구체적이며 직접적이고, 노골적일 때는 청불 판정을 내린다'(영등위 '영화 및 비디오물 등급 분류 기준')고 돼 있다. 영등위가 같은 성기 노출 작품인데도 영화 '은교'에 '청불' 판정을 내려 극장 상영이 가능토록 하고, '줄탁동시'에 '제한상영가'를 판정해 극장 상영을 불가능하게 한 것도 이 기준에 따라서다. 일부 영화인들은 "구체성이 전혀 없어 결국 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영화의 운명이 좌우되는, 너무 모호한 기준"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영등위 측은 " '줄탁동시'는 성기노출이 아니라 직접적인 성행위 묘사 때문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며 "언어로 규정된 판정기준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위원들의 종합적 판단을 더 신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