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작가 임자혁(36)의 무기(武器)는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풍경을 날카롭게 포착해 내는 시력(視力) 1.5짜리 두 눈이다. 또 그렇게 집어낸 장면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해 내는 재치다. "다른 사람들이 놓쳐버린 재미있는 광경을 발견했을 땐 횡재한 듯한 느낌이 든다. '나만 볼 거야' 하는 심정으로, 신이 나서 작업한달까."
9~29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일곱 번째 개인전 '원더월드(Wonder World)'는 임자혁 특유의 경쾌한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전시. 새뜻한 빛깔, 단순하고 깔끔한 도안의 종이 콜라주 드로잉 40여점이 관객에게 "숨겨진 이야깃거리를 찾아내 달라"며 속삭인다.
작품 '감시'(2012)는 다리를 쭉 뻗고 왼 발목을 오른 발목 위에 올리고 앉았을 때, 벗겨지기 시작한 양쪽 엄지발가락의 검정 페디큐어가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눈 한 쌍처럼 보인 데서 착안한 것. 또 다른 작품 '남편'(2012)은 돌돌 말아 아무 곳에나 팽개쳐진 남편의 양말이 "항상 피곤해하는 남편의 얼굴 같다"고 생각해 그린 그림이다.
이런 작품들이 '유머' 계열이라면, 작품 '균형'(2012)은 '감동' 계열. 뜰에 어울릴 각종 식물과 꽃 화분이 닫힌 창 앞에만 몰려 있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이 묻어 있다. "할머니가 병석에 눕자, 아버지는 할머니가 누워서도 예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창가에 화분과 나무를 몰아놓았어요. 제 눈엔 이 모습이 '치우침'이 아니라 할머니를 위한 '배려'와 '균형'으로 보였죠."
시사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임자혁은 초지일관 '가벼움'을 잃지 않는다. 그는 "가벼움이야말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거대한 담론을 다루기보다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소소한 이야기들을 그려내며 세상의 틀에 박힌 시각을 변화시키는 게 작가로서의 내 목표"라고 했다. '심각함'이 기본 미덕으로 꼽히는 미술계에서 그녀는 일부러 석사 논문 한 챕터를 '사소함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바쳤다. "그러나 결국 우리 삶이란 대개, 그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요?" (02)730-7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