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교육이, 학문과 학문이…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는 접점에서 장벽이 허물어지고 융복합이 일어나죠. 거기에서 발견과 발명 같은 새로운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바로 DGIST에서 그 폭발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출발점에 섰다. 1년 2개월여 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다. 구성원들과 머리를 맞대 비전을 만들었다. 5월 2일 대내외에 비전을 선포한다. 그의 구상은 이렇게 첫발을 내딛게 됐다.
작년 2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신성철(申成澈) 총장은 "캠퍼스에 도착한 첫 느낌은 1977∼1980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보 연구원이던 시절, 허허벌판이었던 대전 대덕연구단지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부터 백지(白紙)에 하나 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 24일 오후 DGIST 7층 총장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물리학계의 거목(巨木)으로 명성을 떨친 과학자보다는 이미 대학의 발전을 위해 경영에 몰두하고 있는 CEO의 모습이 더 어울려 보였다.
"KTX 동대구역에 내려 1시간 넘게 오면서 '아~ 진짜 시골이구나' 싶었다.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슬산과 낙동강에 둘러싸인 캠퍼스에 도착했을 때는 가슴 벅찬 무언가를 느꼈다. 걱정보다는 해야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끊임없이 떠올라서 기뻤던 것 같다."
―캠퍼스라기보다는 아직은 공사현장 사무소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과학기술의 선두가 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다. 내년 6월 이곳엔 경제자유구역 연구개발특구인 대구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기계연구원, 로봇산업연구원 등이 들어선다. 그 중심에 DGIST가 두뇌가 되는 것이다."
20년 넘게 KAIST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부총장까지 지낸 신 총장이 신출내기 대학행을 선택한 데 대해 과학기술계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당시 연구원과 교수, 직원 등 구성원 전체가 100여명뿐이었고, 대학원도 갓 문을 열었다.
―1년2개월여 동안 DGIST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우선 대학원생 150여명을 포함해 대학 구성원(비정규직 포함)이 460여명으로 늘었다. 또 대학원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지난 2월 완공됐고, 그 옆으로 학부생들이 공부하게 될 5개 강의동을 갖춘 캠퍼스가 조성 중이다. 2014년 학부생 200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내실도 튼튼해지면서 역할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뇌연구원을 유치했고, 기업체들을 위한 다양한 산·학·연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원으로 출발한 DGIST가 대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인가.
"다른 과학기술(이공계) 특성화대학(KAIST·GIST·POSTECH·UNIST)과 달리 연구와 교육을 균형 있게 끌고 갈 것이다. 다른 대학들은 교육기능이 강화돼 연구소들이 독립을 하거나 부설로 속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연구원으로 출발한 만큼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이 공존하는 모델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연구부와 학사부가 상생할 수 있도록 위원회부터 꾸렸다."
―분야마다 목적이 다른데 상생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대학은 교육과 기초연구를, 연구원은 응용연구와 상용화를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두 분야가 공존해야만 더 넓은 스펙트럼의 연구가 가능하다. 그래서 융복합이 중요한 것이다. DGIST의 3대 경영철학은 차별성·선도성·수월성이다. 대학과 연구원의 공존은 다른 대학과 차별성을 높일 수 있는 첫 번째 방안인 셈이다."
―늘 강조하는 융복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현재 대학원에는 신물질과학(M)·정보통신융합공학(I)·로봇공학(R)·에너지시스템공학(E)·뇌과학(B) 등 5개 전공이 개설돼 있다. 학과라는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전공단위로 학생을 모집했고, 전공별 첫 글자를 따서 미래브레인(MIREBrain)이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결국 자신의 전공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공도 함께 배워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2014년 출발하는 학부도 융복합 교육이 적용되는가.
"전공 구분 없이 200명을 모집한다. 3학년까지는 물리·생물·화학·컴퓨터·자동제어 등 기초과학을 두루 가르칠 계획이다. 적어도 3개 전공 이상의 교수들이 모여 자체 교재를 만들고, 과학기술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인문·사회분야 교육도 강화한다. 여기에 리더십을 키울 수 있도록 이중언어(한국어·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감성 교육을 위해 1인당 악기 1개씩을 가르칠 예정이다. 음악연습실 20개가 있는 이공계대학은 아마 DGIST가 유일할 것이다. 체력을 위해선 태권도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대학 경영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국가출연연구기관이라는 점이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교수영입, 특화된 연구 등을 진행하는 데 경제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부터 지역의 기업인들이 발전기금을 모아 DGIST를 격려해주고 있다. 참 고맙게 생각한다."
―DGIST의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10년 뒤엔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대학으로, 20년 뒤엔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30년 뒤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작지만 강한 대학의 롤모델을 만들어 내고 전 세계에서 DGIST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줄이 이어지는 광경을 매일 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