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동 상하이 특파원

얼마 전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북한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조선(북한)이 중국을 인질로 잡는 데 성공했다는 시각이 있다. 조선이 무엇을 하든 중국이 다 옹호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만일 조선이 진짜 이런 '인질 계략'으로 중국을 대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최근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중국 매체에 북한에 대해 이런 강한 표현이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일 시대와는 상당히 다르다. 김정일이 생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모두 만나주면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극진히 환대했다. 하지만 김정은에 대해서는 중국의 일반 국민들뿐 아니라 지도부에서도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환구시보는 "김정은은 아직 젊어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덜 돼 있다. 중국은 조선의 새 정권을 달래기만 해서는 안 되며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말해야 한다"며 김정은을 아예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니는 환구시보는 지난해 5월 사설을 모아 '솔직히 말하는 중국(講眞話的中國)'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서문에서 "환구시보 사설은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든 선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서도 "일관되게 국익을 수호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가적 당파성은 분명히 했다. 환구시보가 그동안 중국과 외국 간 갈등이 생길 때마다 중국의 국익을 앞세우며 상대국에 거침없이 독설(毒舌)을 퍼부은 것도 이런 나름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 환구시보는 2010년 5월 북한이 핵융합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을 때도 북한정권을 비판했다. "조선이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트램펄린(점프 놀이기구) 점프를 시작했다. 조선은 득의만만한 것 같지만 트램펄린 놀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점프하는 사람이다. 높이 뛰면 뛸수록 더 위험해진다." 하지만 이번 사설은 그때 사설과도 큰 차이가 있다. 당시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모험은 자제하라"는 온건한 논조였지만 이번에는 "여차하면 우리한테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라"는 협박 수준으로 격상됐다.

환구시보는 국익과 관련된 민감한 외교사안에 대해서는 중국공산당 상부와 공감 없이 사설을 게재할 수 없다. 그들은 당 기관지의 자매지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당이 생각하는 국익이기 때문이다. 최근 상하이를 방문한 한국의 한 고위 외교관은 "환구시보의 이번 사설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한 중국 정부의 분노가 담겨 있다"며 "중국이 안보리의장 성명에 그토록 신속하게 찬성할 줄은 우리도 몰랐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그동안 적지 않게 바뀌어 왔다. 과거에는 국제 사회의 북한 제재나 비난 결의에 대해 무조건 반대 입장을 견지하다가 점차 수시로 기권하더니, 이제는 찬성을 드나드는 형국이 됐다. 중국은 오는 가을 지도부가 더 젊은 세대로 바뀌면 북한 정권과의 유대감은 더 옅어질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런 시대변화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