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설가의 특이한 문학상 수상소감 화제

입력 2012.04.29 22:11 | 수정 2012.04.29 22: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심상대 씨
29일 강원도 춘천에서는 어떤 독특한 문학상 수상소감이 화제가 됐다. 심사위원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문학적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밋밋한 관행과는 조금 다른 시상식이었다.

주인공은 제 6회 김유정문학상의 수상자인 소설가 심상대(52). 1990년 ‘묵호를 아는가’로 등단한 이래 그의 수상은 2001년 현대문학상에 이어 두 번째다. 11년전 첫 수상때는 본인이 수상자였음에도 문학상 제도에 대한 위트 넘치는 비판으로 문단의 큰 화제거리가 된 터라, 사실은 이번 시상식도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이날 그는 ‘소설가들이 부러워해야 할 인생조건’에 대해 유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소감을 쏟아냈다.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가 인생의 3대 필요조건이 바로 실연, 가난, 질병. 그는 서른도 못되어 요절한 ‘봄봄’의 작가 김유정(1908~1937)과 자신을 포함한 젊은 후배들을 견주었다. 우선 실연(失戀)의 문제. 명창이자 소리기생이었던 박록주에게 딱지 맞은 청년 김유정의 수많은 연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외면하는 여인을 향해 피를 토하며 호소하자면 얼마나 농밀한 문장이 요구되며 심화발전됐겠느냐”며 “김유정 문학의 많은 부분이 박록주라는 여인에게 빚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목숨을 건 연애도, 피를 토하는 실연도, 가슴이 썩어문드러지는 이혼도 한 번 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 소설가들이 진정 부러워해야 할 인생조건”이라고 했다.

가난과 질병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근 한 네티즌이 소설가와 연예인을 노골적으로 비교해 올린 글을 인용했다. 그 네티즌은 “요즘 소설 정말 재미없고 한심하다. 뮤지션·개그맨들은 마약이라도 하는데, 소설가 중에는 어째 마약하는 놈도 없냐”고 투덜거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 분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소설가가 어디 마약 살 돈이 있냐”는 농담으로 운을 뗐다. 그리고는 김유정의 일화를 다시 예로 들었다. 폐결핵으로 투병하다 죽기 직전 막역한 친구 안회남(안국선의 아들)에게 쓴 편지. 스무아홉 살 남루한 소설가는 돈을 부탁한 편지에서 “그 돈으로 우선 닭 30마리를 고아 먹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썼다.

이날 시상식장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원 수상소감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20대 시절 이곳 춘천에서 ‘목욕탕 때밀이’를 했던 경험이다. 신춘문예 준비를 하다 돈이 다 떨어진 그는 목욕탕 취직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당시 탈의실지기 노인과 대중탕 욕조 청소문제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져 티격태격 했다는 것.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이었지만, ‘때밀이’ 처지에 늘 탈의실 온돌바닥에 누워 최인훈 전집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자신을 곱게 봤겠냐는 것이다. 작가는 “그 때 그 탈의실지기 할아버지께 오늘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사실 이날 작가가 예로 든 일화들은 결국 요즘 젊은 후배 소설가들에 대한 충고이기도 하다. 문학의 영토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머리가 아니라 직접 겪은 삶과 인생으로 쓴 소설로 이 위기를 돌파하자는 취지다.

그는 “아무리 천재성이 뛰어난 소설가래도 인생이 없는데 어찌 슬픔과 고독이 있겠으며, 슬픔과 고독이 없는데 무슨 유머와 패러독스가 생성될 수 있겠느냐”면서 “어영부영 100년을 사는 소설가보다 스무아홉 살에 생을 마친 김유정 선생님의 소설이 지금도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2001년 현대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는 세금공제액 45만원까지 합쳐 상금 1000만원 전액을 입양아 단체에 기부했다. 이번 김유정문학상 상금 3000만원은 우선 급한 빚부터 갚는다. 지난 11년간 생활은 했지만 생활비는 벌지 못했던 까닭에 벌어진 일이다. 그는 “목욕탕 식구들, 제 소설이 재미없다는 네티즌 여러분, 그리고 제 상금 취득을 고대하는 카드사 연체금 담당자들까지도 흥미와 감동으로 읽고, 읽은 뒤에도 버리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는 그런 소설을 쓰겠다”는 유머 섞은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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