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박현철 기자]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그는 이름값에서 1년 후배에 앞서 있었으나 프로 데뷔 후 그 위치는 천양지차. 후배가 국내 최고급 에이스로 우뚝 서는 모습을 바라보던 거포 유망주는 적시타 한 방으로 간만에 포효했다. 두산 베어스 9년차 내야수 윤석민(27)과 KIA 타이거즈 에이스 윤석민(26)의 29일 잠실벌 경기는 그 둘의 인연이 얽혀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두산 윤석민은 29일 잠실 KIA전서 1-3으로 뒤지고 있던 6회말 2사 2루서 상대 선발 KIA 윤석민의 4구 째를 밀어쳐 2-3을 만드는 우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 안타로 인해 KIA 윤석민은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손영민에게 넘겼다. 팀이 7회 정수빈에게 동점 스퀴즈 번트를 내주며 윤석민의 승리 요건 조차 날아갔다.
1년의 차이가 있기도 했으나 구리 인창중 시절 두 윤석민의 입지는 반대였다. 두산 윤석민이 투타 양면에서 재능을 뽐내는 선수였던 반면 KIA 윤석민은 체구가 크지 않아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 둘을 모두 가르쳤던 김진욱 두산 감독은 그들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밝혔다.
“우리 팀 윤석민은 투수로도 에이스였고 타자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인창고 시절 우리 팀 윤석민이 어깨를 다치면서 타자로 전향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 재능이 아까워 가끔 경기 막판 1~2이닝을 던질 때도 있었다. 반면 KIA 윤석민은 투구 밸런스나 던지는 요령이 좋았지만 체구가 작아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투수는 아니었다. 2학년 시절 분당 야탑고로 전학을 갔는데 그 이후 체구가 커지면서 정상급 유망주로 발전하더라”.
프로 데뷔 후 둘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두산 윤석민이 김동주를 연상케 하는 타격폼과 파괴력으로 2군에서 ‘제2의 김동주’로 불렸으나 정작 1군에서는 좋은 활약상을 선보이지 못했다. 설상가상 군 문제까지 겹치며 2008시즌 도중 공익근무 입대, 2010년 5월 소집해제 후 실전 감각을 찾기 위해 상당 기간 2군에 있어야 했다.
반면 KIA 윤석민은 계투 요원으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 2006시즌 팀의 뒷문지기로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로까지 뽑혔다. 그리고 2007년부터는 팀의 에이스로서 선발진을 지키는 등 국내 정상급 우완으로 자리를 굳힌 뒤 지난해 투수 4관왕좌에 오르며 메이저리그에서도 노리는 정상급 우완으로 우뚝 섰다. 실제 29일 경기서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한 구단의 스카우트가 잠실을 찾아 볼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분석이 무산되었다.
잠깐의 한 타석에서 두산 윤석민이 KIA 윤석민을 이겼다. 타자 윤석민은 4구 째 투수 윤석민의 바깥쪽 공을 밀어쳤다. 경기 후 타자 윤석민은 “특별히 노리고 들어간 공은 아닌데 마침 공략할 수 있을 만한 공이 날아와서 휘둘렀을 뿐”이라고 답했다.
김 감독은 두산 윤석민에 대해 “중고교 시절 야구도 잘했고 의협심이 강해 자기 또래 아이들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응징하던 녀석”이라며 웃었다. 학창 시절 잘 나가던 두산 윤석민은 오랜만에 밀어친 적시타로 어깨를 으쓱했다.
잠실=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