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밤송이 같아요. 달콤한 밤을 감싸고 있는 가시를 다루듯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죠."(김상호·원광대 법학과 2년)
"스펙 쌓으려고 하는 봉사는 아이들이 귀신 같이 알아채요. '나만을 위한 봉사'를 위해 문 두드리는 친구는 절대 사절입니다."(동현우·연세대 행정학과 4년)
지난 20일 오후 6시, 서울 양천구 목동 KT꿈품센터(이하 '꿈품센터')에서 봉사를 주제로 얘기꽃을 피우던 김상호·동현우·박수진(우송대 아동복지과 2년)·전서진(국민대 식품영양학과 4년)·하태홍(부산대 심리학과 2년)·한진석(서울대 사회복지학과 2년)씨를 만났다. 학교도, 학과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 여섯 젊은이에겐 확실한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올레대학생봉사단'(이하 '올레봉사단') 소속이란 사실이다.
◇대학생 150명이 10개 시도서 '교육 기부'
올레봉사단은 지난해 5월 1기 발족과 함께 선행의 '닻'을 올렸다. 동현우·박수진·하태홍씨는 1기, 나머지는 지난달부터 활동을 시작한 2기 단원이다. 서류 평가와 면접 등 2단계 전형을 거쳐 선발된 총 단원은 150명. 이들은 전국 10개 시도에 설치된 10개 꿈품센터와 50여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지역아동센터는 가정 형편상 부모의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어린이와 청소년이 공부를 배우고 끼니를 해결하는 장소다.)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동현우씨는 올레봉사단의 장점으로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대기업, 많죠. 하지만 대부분은 1회성에 그칩니다. 아이들에겐 집이나 도서관 지어주는 사람보다 수학 공식 하나라도 더 알려주는 선생님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올레봉사단에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올레봉사단원이 되면 KT 측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별도 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투입된다. 하지만 이날 만난 단원들은 "이론과 실습은 하늘과 땅 차이더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 앞에 놓인 환경이 당초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는 것이다. 하태홍씨는 자신이 봉사 중인 부산 좌천지역아동센터(동구 좌천동)의 공부방 얘길 들려줬다. "제가 봉사하는 센터의 공부방은 좁은 공간에 10개 남짓한 유아용 책상이 꽉 들어차 있어요.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매트를 깔아놓고 엎드려 공부하는 아이도 많고요.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줄잡아 삼사십 명이 오가는데도 상주 교사는 두 명이 고작인 형편입니다."
전서진씨는 "봉사 중 만난 아이들의 거친 언행 때문에 상처받는 일도 적지않았다"고 말했다.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초등 4년생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하루는 몇몇 아이가 제게 그 친구에 대한 얘길 해주더라고요. 밤새도록 자기를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지난밤 센터에서 잠들었다더군요. 그 일 이후 '비뚤어진 행동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무관심하던 아이들,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단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내 손길을 거친 아이들이 달라졌을 때'다. 대전 꿈품센터와 주랑지역아동센터(동구 자양동)에서 역사체험 수업을 진행 중인 박수진씨는 "날이 갈수록 역사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초창기만 해도 아이들은 툭하면 '언제 끝나냐' '여기 왜 왔는지 모르다'처럼 힘 빠지는 질문만 해댔어요. 버스로 몇 시간씩 걸리는 일정도, 요령부득인 제 수업도 버거웠던 거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질문이 '다음 번 목적지는 어디냐'로 바뀌더라고요. 지난주 강화도에 갔을 땐 '여기 무신(MBC 드라마)에 나왔던 곳 아니냐'며 알은체하는 친구도 있었답니다."
올레봉사단 활동은 단원들의 장래 희망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고교 시절을 포함, 교육 봉사 경험만 올해로 5년째인 한진석씨는 "전공(사회복지학)을 살려 어려운 사람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상호씨는 일단 '꿈품센터 연극치료 수업 진행'이란 단기 목표를 정했다. "얼마 전 전북도청 주최로 열린 '2012 재능나눔 프로그램 공모전'에서 '꿈의 씨앗을 심는 연극치료'란 제목의 제안서로 은상을 받았습니다. 상금은 (연극치료)수업비로 쓸 거예요. 저도 올해가 가기 전 연극치료사 자격증을 따 올해 개소한 전주 꿈품센터 수업을 직접 이끌어보고 싶습니다."